2009년에 주말과 떨어져있는 공휴일이 몇 일 되지 않는다는 우울한 소식을 먼저 전하면서, 설날 하면 떠오르는 윷놀이 이야기를 잠깐 하자.
윷놀이의 룰은 집집마다, 친적 어르신 중 어떤 분이 윷판을 그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자의 집에서는 나름의 변형룰로 윷놀이를 한다. 윷판에다 몇 가지 옵션이 달린 포인트를 지정해주는데, 마지막 골인 지점 바로 앞에 설치된 '함정포인트', 멀리 돌아가는 윷말을 위한 '임신포인트' 등을 그려주는 것이다.
이런 변형룰 덕분에 마지막까지 승부를 예측하기 힘들어지고 역전의 가능성이 생겨 게임이 더 재밌어진다. 또 다른 설날의 대중적인 민속놀이 화투도 마찬가지다. 목소리가 누가 크냐에 따라 결정되는 그 날 그날의 변형룰이 게임을 더 흥미롭게 만들곤한다.
갑자기 설날 민속놀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투를 '바둑의 변형룰'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기 때문이다.
바투란
지난 12월 22일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오픈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바투. 게임사의 설명에 따르면 '바둑의 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더욱 전략적이고 스피디한 게임으로 재탄생'시킨 게임이다. 특히 바투 룰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한국과 중국의 바둑 프로기사들 및 보드게임 전문가들이 수천 번의 테스트를 거쳤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 '바둑 변형룰 온라인 게임'이 바투인데...
세세한 룰까지 따지자면 복잡하기 그지 없는 바둑이지만, 게임을 진행하는데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만 생각하면 바둑룰의 기본은 사실 단순한 편이다.
오목처럼 흑과 백이 번갈아 가면서 하나씩 돌을 둔다. 돌의 사방이 상대방의 돌로 둘러싸이면 죽는 것이 되어 돌을 판에서 들어낸다. 마지막에 더 많은 돌이 남은 쪽이 이긴다. 끝.
바투도 이런 바둑의 기본룰을 바탕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대신 조금 더 게임을 빠르게 진행시키고, 역전의 가능성을 극대화시키고,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는 긴장되는 승부를 연출(?)하기 위한 몇 가지 변형룰을 도입했다.
무엇이 다른가
가장 큰 차이는 바둑판의 크기다. 19x19 로 광활한 느낌이 드는 바둑판과 달리 11x11 의 조금 작은 판을 사용해 한 판 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15분~30분 정도로 짧고, 판이 좁아서 상대돌과의 교전도 더 빨리 자주 일어난다.
바투는 이스포츠로 활성화시키기위해 스타크래프트에서 몇 가지 용어를 빌려쓰고 있어서 '빌드'라는 것부터 게임이 시작된다. 바둑이 흑돌부터 하나씩 번갈아가며 돌을 놓는 것과 달리 바투는 처음에 흑돌 백돌이 동시에 3개의 바둑돌을 올려놓는다.
실제 바둑판에서 서로 3개의 바둑돌을 올려놓는다면 상대방이 어디에 놓는지 확인하면서 게임이 진행되겠지만 온라인 게임이므로 상대방에게 보여주지 않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유리한 위치를 미리 3점 차지하려는 심리전도 생기게 된다.
빌드에서 이어지는 것이 턴베팅. 자신의 점수를 다소 내주더라도 선을 잡는 것이 유리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서로 자신의 점수를 걸고 베팅을 하게 된다. 더 많은 점수를 베팅한 쪽이 선을 잡게되어, 무조건 흑이 선수를 가져가는 바둑과 달리 백도 선수를 가져가는 경우가 있다.
그 다음에는 보통의 바둑처럼 게임이 진행된다. 번갈아가며 한 수 한 수 두게 되고 상대방의 돌을 잡으면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싸움이 시작된다. 바둑은 결국 누가 더 많은 땅을 차지하냐 하는 땅따먹기인데, 그런 점에서 바투는 땅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이 바둑과 다르다.
처음 언급했던 윷놀이에 함정 포인트를 떠올려보자. 바투에서 어떤 위치는 +5점의 보너스가 있다. 어떤 위치는 -5점의 패널티가 있다. 형세상 그 위치에 놓지 않으면 안되는데 하필 -5점짜리라면 놓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어떻게 하면 자신이 + 포인트를 가져가고 상대방을 - 포인트에 놓도록 몰아갈지 하는 것이 바둑과 달리 바투가 가진 또 하나의 전략포인트다.
아무도 - 포인트를 가져가지 않는다면? - 포인트는 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곳이다. 같은 면적을 자기 땅으로 가졌더라도 - 포인트를 가지고 있으면 땅값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정사각형의 바둑판에서 어떤 공간을 자신의 주된 세력으로 잡을 것인지가 맵포인트 때문에 바뀌게 되고, 더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하게 된다.
바투의 가장 큰 특징은 '히든' 이다. 실제 바둑에서는 이런 수가 불가능하지만 온라인 게임이라서 가능한 '히든'은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는 돌을 하나 놓는 것을 말하는데, 쉽게 오목을 예로 들어보자. 4점을 잇는 자리가 두 군데인데 둘 중 한 곳에 돌을 놓았는데 상대방은 어디에 놓았는지 모른다고 하자. 승리에 결정적인 한 수가 되지 않겠나.
바투에서도 마찬가지로 절묘하게 사용한 히든 한 수가 게임의 승패를 뒤짚는다. 물론 히든에 무조건 당하지만은 않는다. 히든을 당한 상대방은 숨겨진 돌이 어디에 놓여있는지 한 번 뒤짚어 볼 권한을 가지고 있다.
-2 점의 패널티가 있는 이 히든 확인권을 바투는 '스캔'이라고 부르는데, '과연 상대방은 어디에 보이지 않는 돌을 숨겨놓았을까', '제발 여기에 놓은 것을 알아차리지 말아줬으면' 하는 식으로 보이지 않는 돌 하나를 두고 두 사람은 머리를 쥐어뜯는다.
바투를 하다
바둑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둘 줄 안다면 바투를 훨씬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더 전투가 빈번하고 더 빨리 진행되어 부담이 적으며, 바둑의 심리전과 수싸움 외에 빌드, 턴배팅, 히든, 스캔, 맵포인트, 스킬사용 등에서 추가적인 재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바둑을 그렇게 잘 하지 못해도 관심이 있다면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기자는 바둑의 아주 기본적인 룰을 알고 있으나 실력은 형편없어서 급수로 따질 형편도 안되지만, 제일 낮은 급수가 18급이니 18급이라 하는 정도의 바둑 실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 실력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 백이면 백 진다.
이렇게 패배가 잦다보니 흥미가 떨어지는 것 말고도, 바둑을 할 때는 한 판 한 판이 길고 판이 넓다보니 잠깐의 실수로 대마가 잡히면 심리적으로 타격이 컸다. 또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실력에 맞는 상대를 찾는 것도 힘들었다. 유구한 세월동안 많은 수들이 정착된 게임이라 즐기기 전에 공부를 해야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
바투는 그런 점에서 기자처럼 초특급 하수에게도, 좀 더 가볍게 접근할 수 있어 좋았고 지더라도 큰 부담이 없었다. 실제로 20판 정도 해봤는데 5레벨이 되었고, 승률은 40% 정도가 나왔다. 잘하는 실력은 아니지만 꽤 재미를 느꼈다. 비슷한 실력의 상대들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바둑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빌드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내 빌드가 지금 유리한 것인지 불리한 것인지, 히든은 언제 사용해서 상대방에게 고민덩어리를 안겨주면서 판세를 유리하게 만들지, 상대방이 사용한 히든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 포인트에 둬야할지 말아야할지 와 같은 바투만의 특징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거기서 재미를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전에, 바둑과 동일한 기본 플레이에서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자주 대마가 잡히고 단수를 보지 못하고 내 돌들을 연결시키지도 못하는 등 허접의 극치를 달렸지만, 비슷한 레벨대 유저들과 매칭되었기 때문에 상대방도 같이 허접한 플레이를 하곤했다.
그래도 거의 내가 이긴 판이라고 생각하며 여유롭게 두다가 상대방이 히든을 사용해 거꾸로 내 대마를 잡으면서 '아. 히든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기는 했다. 물론 아직은 히든을 잘 사용하지도 잘 막아내지도 못하는 수준이지만 조금은 바투의 매력을 느꼈다고나 할까.
바투를 보다
바투는 침체기(?)에 빠진 바둑계와 스타크래프트 이후로 변화의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스포츠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탄생한 온라인 게임이다.
바투를 개발한 곳은 온미디어의 자회사 '이플레이온'이고, 온미디어는 게임방송 온게임넷과 바둑TV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바투를 이스포츠의 단계로 올리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이번 스타리그 스폰서를 '바투'가 맡았고, 바둑TV에서는 바투 대회를 방송하고 있다.
바둑계의 관심도 높다. 오픈베타를 맞이해 진행되고 있는 바투 인비테이셔널 대회에는 유명한 프로 바둑기사인 조훈현, 이창호, 유창혁 뿐 아니라 중국 바둑 랭킹 1위인 '구리', 세계적인 바둑대회인 응씨배 우승자 '창하오'까지 참가했다. 내년부터는 연간 상설리그를 개최하고 프로 바투선수를 육성한다는 계획도 있다.
바투가 이스포츠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직접 하는 것뿐 아니라 '보는 것'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 바둑의 룰이나 바투의 룰을 잘 모르는 시청자가 대회를 보면서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지는 바투가 이스포츠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리는 중요한 요소다.
마침 기자가 바로 그 바둑이나 바투를 잘 모르는 시청자. 이창호, 조훈현 등 유명한 국내 프로기사들이 바투 경기를 하기 위해 타임머신이라 불리는 경기장에 헤드폰을 쓰고 어색하게 앉아있는 것부터가 색달랐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꽤 흥미진진한 관람이었다.
돌을 놓는 수순이나 지금의 착수가 어떤 의미인지는 전혀 알지 못하는 바둑 까막눈이지만, 그런 부분은 해설자의 설명으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바둑 경기를 볼 때는 한 수 한 수가 매우 신중하게 진행되어서 바둑을 잘 모르면서 보기에 지루한 경우가 많았는데, 바투는 한 수를 두는 데 25초의 시간제한이 걸려있고 전체 경기도 15분~30분 사이에 끝나서 지루하다는 느낌도 적었다.
특히 바투가 진행되는 순서를 살펴보면 게임의 흐름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맥점들이 존재해서 적당히 긴장감을 유발시켜주는 점이 스타크래프트의 전개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바투의 빌드 - 턴배팅 - 게임진행 - 언제 히든을 사용할 것인가 하는 긴장감 - 히든사용 - 스캔사용과 히든에 대한 대처 - 마지막 최종 점수로 인해 뒤집히는 승패.
스타크래프트로 치자면, 초반 빌드 싸움에서 일어나는 유불리 - 누가 먼저 배를 째고 멀티를 먹느냐 - 공격 타이밍을 언제로 잡을 것인지 - 상대방의 심장부를 노리는 필살 전략을 준비하는지 - 그리고 그것을 눈치채고 막느냐 마느냐 하는 것과 대응된다.
이런 흐름들 때문에 경기를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전개에 따른 유불리의 변화 등을 해설자의 도움을 받아 쉽게 알 수 있어 보는 재미가 더해진다.
요즘 진행되는 바투 인비테이셔널 경기는 바투 공식홈페이지에서 VOD 로 다시보기 할 수 있는데, 지난 주에 치뤄진 조훈현vs허영호의 경기나 이창호vs김형우의 1차전 경기를 추천한다. 세계적인 프로기사들이 바투 선수들과 어떻게 게임을 치뤄나가는지, 그리고 바둑과 약간 다른 변형룰이 어떻게 프로바둑기사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지도 볼 수 있다.
☞ 바투 인비테이셔널 VOD 보러가기 [클릭!!]
이 중 빌드에 사용한 돌(베이스라고 하는데 5점짜리다)을 잃으면서 어렵게 경기를 이끌어나간 이창호 국수가 극적으로 승리하는 이창호vs김형우의 1차전은 바둑을 잘 못해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아 소개한다.
그러나 스타리그를 후원하고 유명한 프로기사들을 참가시키는 등 적극적인 홍보 활동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바투를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판 한 판이 빨리 끝나는 1:1 경기라서 매칭은 잘 되는 편이지만, 서버는 일반 서버와 청소년 서버 두 개 뿐이고 사람도 많이 없다.
이는 태생적인 어려움 때문이기도 한데, 접근성이 높아지고 더 재미있어졌다고 해도 바둑을 전혀 모르는 신규유저에게는 여전히 진입장벽이 있다는 점. 바둑을 오랫동안 즐겨왔던 바둑인들에게는 오히려 변형룰이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고, 온라인이 아닐 때는 변형룰을 바둑에 적용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바투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바둑을 둘 줄 아는 '바둑인구'는 5명에 한 명 꼴로 거의 천 만 명에 육박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바둑인구는 3천~4천만명이 된다고 한다. 만화 고스트바둑왕이 '신의 한 수'로 바둑에 대한 관심을 잠시나마 불러왔듯, 바투가 또 하나의 이스포츠 시장을 열고 여가문화인 바둑을 다시 한 번 활성화시킬 촉매제가 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제 막 오픈베타를 시작한 게임에 너무 큰 기대인가?
일단은 한 판 더. 이번에는 히든을 신의 한 수로 승화시켜볼 참이다.
Inven Niimo - 이동원 기자
(Niim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