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초 닌텐도는 미국 무역대표부에 불법 복제 국가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고, 그 리스트에 중국, 브라질, 멕시코, 스페인, 파라과이를 비롯해 한국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국내 매체들이 보도했다. 인터넷 보급률이 높은 한국이 불법 복제된 ROM 파일을 배포하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애써, 우리나라를 애써 변명하기 위한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머리 속을 맴돌았지만,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국가적 망신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 누구라도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확인할 수 있는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니까.



하지만, 그 당시 이 사건을 보도한 일부 매체들은 화살을 닌텐도에게 돌렸다. 심하게 비판했던 매체 중에 하나는 '게임 중독은 못 본체 하더니.. 닌텐도의 뒤통수'라는 제목으로 마치 우리나라는 별 잘못이 없는데 닌텐도가 괜히 고자질했다는 식의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 한국닌텐도 공식 홈페이지




그런 형태의 글에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부분이 '국내 게임 시장의 발전에 거의 투자하지 않았다.'는 문구다. 그리고 게이머들을 함께 등장시켜, 국내 게임 시장의 발전에 투자하지 않는 것(그 투자의 의미를 기자는 아직도 모르겠다.)이 곧 게이머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라는 주장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2006년 7월 한국닌텐도가 설립된 이후, 국내에 출시되는 게임은 100% 한글화가 기본이라는 방침을 정하고, 지금까지 수많은 양질의 타이틀을 상당한 수준의 한글화를 통해 출시해 냈다. 사실, 이윤을 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한글화 작업은 쉽지 않는 결정이다.



한번 작업을 하면 북미 지역을 비롯해 유럽, 영어를 사용하는 일부 아시아 지역에 통용되는 영어와 달리 한글은 같은 비용을 들여 로컬 작업을 해도 시장이 협소한 우리나라 안에서만 판매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등학교에서 소지한 닌텐도 DS 불법구동칩의 용량이 남들 보다 적다고 일명 '왕따'를 당할 만큼 불법복제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긍정적인 판매량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불법복제를 이유로 국내 게임개발사들 조차도 모조리 패키지 시장에서 손을 떼버린 현 상황에서 꿋꿋하게 한글화를 통해 타이틀을 출시해나가는 닌텐도에게 국내 게임 시장의 발전에 투자하지 않는 다고 두서 없이 비판하는 것은 솔직히 납득하기 힘들다.



게다가 최근, 한국닌텐도는 만화 마법천자문을 소재로 국내 개발사와 협력해 닌텐도 DS 소프트웨어로 출시, 교육용 게임소프트로는 이례적으로 현재 6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다.




국내 게임계에 이와 비슷한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업체가 있는 데, 바로 블리자드다. 최근 스타크래프트2의 출시가 점점 가시화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는데, 이러한 비판들의 대부분은 "한국 소비자들은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주었는데, 블리자드는 과연 한국 시장에 어떠한 투자를 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블리자드의 마이크 모하임 사장이 방한했을 때 언급한 '한국 시장에 대한 가능성'에 대한 멘트를 슬쩍 함께 끼워 넣다가, 다른 외국 기업들이 국내 혹은 아시아 시장에 어떠한 투자를 했고, 어떠한 결과를 이뤄냈는지 애써 비교한다.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한 블리자드의 타이틀에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국내 게임계다 보니 자신의 이익을 위한 다양한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탐탁스럽지는 않지만 애써 봐줄 수도 있다. 그러나, 도저히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는 것은 이러한 빈약한 논리의 방패막이로 꼭 '게이머'들을 내세운다는 거다. 굳이, 예를 들면 이렇다. "게이머들을 정말 무서워 한다면 앞으로 이러 이러 해야 한다."




▲ 지난 달 21일 서울 강남에서 열린 스타크래프트2 기자 시연회




한국 소비자들이 블리자드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준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블리자드가 게이머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디아블로부터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그리고 월드오브워크래프트까지 정말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양질의 타이틀을 연달아 출시해 냈기 때문이다.



게이머들은 게임을 구입함과 동시에 그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하고, 개발사는 그렇게 벌어들인 수익으로 더 재미있는 게임을 출시하는 것이 게임을 하는 주체인 게이머들과 개임을 만드는 주체인 개발사가 이뤄내는 가장 바람직한 관계다. 만약, 국내 개발사든 해외 개발사든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즉 게이머들에게 어떠한 방법으로든 피해를 줬다면 그때는 비판 받아야 함이 당연하다.



하지만, 지스타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국내에 개발 스튜디오를 설립하지 않았다고, 자신의 기준에서 국내 게임 시장의 발전에 뭔가 투자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이 과연 '게이머를 위한' 비판일까? 오히려, 이 주장을 정말로 게이머들과 직접 마주 보고 말할 용기는 있는 건지 되묻고 싶다.



요즘 시국이 위중해서 네티즌 사이에 '주어 없음'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그래서 그 빈자리에 어물쩍 우리 게이머들을 주어로, 또는 방패막이로 끌어들였다면 정중히 사양한다. 그리고, 이제 그만 솔직해질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