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멸망까지 남은 시간은 30초!



사악한 마왕이 한 방에 세계를 멸망시키는 파멸의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주문을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30초, 이제 세계가 멸망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30초밖에 없는 것이다. 30초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하여 레벨업을 하고 돈을 모아서 장비를 교체하고, 동료를 얻고 퀘스트도 수행한 다음 마왕을 쓰러뜨린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게임이 있다. 말도 안되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용자30에서는 현실이다.



용자30은 어디서 나온 물건인가

일본의 인디 게임 제작자인 UUE에 의해 제작된 30초 용자라는 게임이 있다. 30초동안 레벨을 올려서 마왕을 쓰러뜨린다는 간단한 형태의 게임으로, 말이 30초지 사실은 돈을 내면 10초씩 늘릴 수 있기 때문에 딱 30초는 아니다. 마을 상점에서는 장비품도 팔고 필드에서는 몬스터와 만나고 하는 식으로 일본식 RPG의 기본적인 컨텐츠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 용자30의 원작인 30초 용자, 제작자 UUE는 용자30의 디렉터를 맡게 된다 ]



이 게임을 기반으로 PSP용으로 제작된 것이 바로 용자 30이다. 30초 용자와 마찬가지로 30초 이내에 레벨업을 하고 장비를 구입하여 마왕을 쓰러뜨리는 것은 같지만, 단순히 마왕과의 전투가 전부가 아니라 RPG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들어가 있다.



게임 발매 전부터 일본 PSN을 통하여 용자30/마왕30/공주30/기사30이 각각 배포되었으며, 이를 통해 미리 접해본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30초만에 마왕을 잡는 용자와 30초만에 몬스터를 소환하여 악당을 물리치는 마왕, 통금 시간 30초 이내에 성 밖으로 나가서 약초를 구해오는 공주, 30초 동안 주문을 영창하는 현자를 목숨 걸고 지키는 기사의 이야기였다.



30초만에 뚝딱 해결한다는 컨셉 하나만으로 기자의 관심을 끌었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게임 자체가 일본에서 제작된 까닭에 당연하게도 일본어로 되어 있었고, 한국에서는 정식 발매를 하지 않기 때문에 손에 넣으려면 비싼 돈을 주고 주문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높은 가격으로 한동안 고민을 해야 했지만 재미와 호기심이 그것을 뛰어넘었고, 결국 거금을 지불하고 해외 주문을 통해 기자는 용자30을 손에 넣었다.



30초만에 세계를 구한다

게임을 시작한 뒤 흘러나오는 오프닝 영상과 웅장한 음악은 잠시, 곧 캐릭터들의 본모습인 도트 덩어리들이 튀어나온다. 게임 내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과거 8비트 또는 16비트 게임기 시절의 RPG가 생각나게 해 주어서 친근함이 느껴진다.




[ 게임 일러스트(좌)와 현실(우)의 주인공들 ]



처음 선택할 수 있는 게임 모드는 총 6가지 중에서 용자30/마왕30/왕녀30의 3가지 게임 모드뿐이고, 나머지는 ???로 표시된다. 예전 체험판으로 배포했던 기사30이 보이지 않아서 궁금했지만, 틀림없이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면 ???에서 출현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용자30의 세계에 발을 내딛었다.



용자30은 한 여행자가 어떤 나라의 왕궁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성 밖의 몬스터 3마리를 잡아 오라는 국왕의 간단한 퀘스트를 수행하면 마왕이 나타나서 세계를 파멸시키겠다며 사라지고, 파멸의 주문 30초 카운트다운의 지옥이 펼쳐진다. 필드에서 사냥중에도 시간은 흐르고, 마을 안에 들어가서 쇼핑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자비없이 흘러가서 결국 타임 오버로 세계가 멸망한다.



그 때 수 많은 용자들이 이를 갈게 만드는 악질 스토커 돈벌레인 시간의 여신이 나타나서 자신과 마왕을 쓰러뜨리는 반 강제의 노예 계약을 하는 조건으로 세계 멸망 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 그러나 되돌려준 시간 역시 30초이고, 유일하게 바뀐 점은 마을에 들어가면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과 마을의 여신상에 돈을 기부하면 남은 시간을 30초로 늘려 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한히 시간을 늘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남은 시간을 30초로 되돌려줄 뿐이다. 그뿐 아니라 한 번 기부를 할 때마다 비용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에 계속 레벨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부 비용이 모자르면 여신이 한 번은 눈감아주지만 남은 시간이 10초 정도가 되면 장비를 차압하여 가져가 버리기까지 한다.



시간의 여신이 돈을 밝히는 이유는 단 하나, 시간은 금이기 때문.




[ 보기에는 아름답고 자비로운 여신이지만 엄청나게 돈과 보물을 밝힌다 ]



시간의 여신과 계약을 맺은 순간 레벨업이 엄청나게 쉬워진다. 계약 전에는 몬스터 한 마리를 잡아도 경험치 10%가 채 오를까 말까 했는데, 서너 마리만 잡아도 레벨이 쑥쑥 오르는 것이다.



뭔가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용자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이상 되돌릴 수는 없고, 별 수 없이 길 가던 청년A는 시간 계약 용자가 되어 세계를 파멸시키려는 51명의 마왕과 싸우게 된다.




[ 용자30 제 2화, 잃어버린 망치를 찾아서 부서진 다리를 고친 후에 마왕을 쓰러뜨린다 ]



각 스테이지마다 서로 다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언제나 용자는 1레벨부터 시작한다. 그렇지만 이전 스테이지에서 얻은 장비는 그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장비를 구해 놓았다면 조금은 편해진다. 또한 마왕 격파까지 걸리는 시간은 10여초에서 10여분까지 다양한데, 레벨업-마왕타도가 전부가 아니라 중간에 퀘스트라던가 이벤트 및 함정과 퍼즐등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왕 타도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단순히 레벨을 올리고 장비를 갖춰서 쓰러뜨리는 것 외에도, 파리채를 이용하여 파리 마왕을 한 방에 날려버리거나 마을 주민에게 폭탄을 얻어서 폭탄으로 처리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볼 수 있다.



500년간 이어진 마왕과 인간의 사투

용자30의 무대는 여신력 100년으로, 용자의 활약으로 50명의 마왕은 쓰러지고 남은 1명의 마왕이 나타날 때를 기다리기 위해 용자는 시간을 멈추고 스스로를 봉인한다.



  • 여신력 200년, 마왕30

    시간은 흘러 여신력 200년. 용자30에서 쓰러뜨리거나 협상을 해야 했던 마왕 중 한 명이 박쥐우산이 되어버린 애인의 저주를 풀기 위해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들을 심판하러 성을 나온다. 용자30에서는 RPG로 게임이 진행됐지만 이번 마왕30에서는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다.



    파워-스피드-사격 형태의 몬스터들을 소환해서 악당들을 쓰러뜨리거나 제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것이 주요 목적으로, 역시 제한 시간은 30초이다. 30초가 지나면 해가 뜨기 때문에 밤에만 활동하는 마왕이 돌아다닐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마왕30은 가위바위보 개념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



    용자30과 마찬가지로 마왕30 역시 30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있고, 시간의 여신은 여전히 돈을 받고 시간을 늘려주면서 부업으로 마왕의 마력 증강과 아름다움을 관리해주는 센터를 운영한다.



  • 여신력 300년, 공주30

    마왕은 무사히 애인의 저주를 일부나마 푸는 데 성공하고, 또 다시 시간은 흘러 여신력 300년. 세계를 통일한 세계 왕국의 국왕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국왕의 외동딸 공주는 아버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석궁을 들고 성 밖으로 나간다. 그렇지만 엄격한 왕비의 규칙으로 30초 내에 성 안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면 쫓겨나게 된다.




    [ 통금시간 30초 이내에 아바마마를 치료할 약초를 구한다, 공주30 ]



    연약한 공주가 용자처럼 칼부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마왕처럼 자유자재로 마법을 쓸 수도 없다. 믿을 것은 국왕이 쓰던 석궁 한 자루뿐. 석궁을 들면 성격이 바뀌는 공주는 스나이퍼가 아니라 무조건 화살을 뿌리는 것이 주특기이다. 그래서 방향키와 4개의 버튼을 이용하여 사방으로 화살을 쏘는 종/횡스크롤 슈팅으로 진행된다.




    공주를 모시는 친위대 병사 2인조는 백성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공주의 가마를 메고 다니느라 언제나 고생만 하지만, 결국 공주는 무사히 국왕의 병을 고친다.



  • 여신력 500년, 기사30

    악한 마법사의 함정에 빠져서 시간의 여신은 봉인되고 세계는 몬스터가 들끓는 황폐한 세상으로 바뀌어 버린다. 무너진 성을 지나던 한 현자는 전투중에 죽은 어린 기사를 되살리고, 그와 함께 각 지역을 돌면서 세상을 구할 용자를 부활시키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RPG였던 용자30과 전략시뮬레이션인 마왕30, 슈팅 게임인 공주30에 이어서 기사 30은 액션으로 진행된다. 30초간 몬스터를 파멸시키는 주문을 영창하는 현자를 목숨을 걸고 지켜냐 하는 기사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각종 함정을 만들어서 현자에게 다가오는 몬스터를 가로막아야 하며, 몬스터는 현자의 파멸 주문 외에는 쓰러뜨릴 수 없고 기절만 시킬 수 있다.




    [ 함정을 쓰고, 그걸로도 모자르면 몬스터에게 매달려서 시간을 버는 기사30 ]



    기사30 진행중에 용자/마왕/공주의 이야기가 중간중간 등장하며 점차 결말을 향해간다는 느낌을 주고, 결국 기사와 현자는 용자의 봉인을 푼다.



  • 여신력 500년, 용자300

    용자30에서 기사30까지 4개의 스토리를 끝내면 다시 본편인 용자로 되돌아오는데, 뭔가 다르다. 시간이 30초에서 300초로 늘어난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300초로 늘어난 건 좋지만 시간의 여신이 없기 때문에 300초로 엔딩을 봐야 한다는 압박이 밀려온다.



    지금까지 쌓아 놓은 용자30의 컨트롤을 총동원하여 300초 이내에 마지막 51번째 마왕을 쓰러뜨려야 하는 것이 용자300이다. 기존의 4편 스토리에서 해 놓았던 평가라던가 결과물이 용자300에 그대로 반영되어 난이도가 바뀐다. 과연 팬티 한 장만 입고 봉인에서 풀려난 용자는 모든 악의 원흉인 초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인가?



  • 여신력 ???년, 용자3

    본편 스토리는 끝났지만 시간의 여신이 심심하다며 도전과제로 부여하는 스토리가 용자3이다. 말 그대로 3초에 모든것을 해결해야 한다. 시간의 여신이 있기 때문에 기부하여 시간을 되돌릴 수 있긴 하지만 되돌려도 시간은 3초라서 패드 한 번 잘못 누르면 바로 게임오버 신세가 된다.



    [ 3초 내로 레벨업과 장비구입 및 대마왕 격파까지, 용자3!!! ]



    용자30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PSP의 UMD라는 고사양 플랫폼을 이용하면서도 일부러 고전 형식의 도트 그래픽을 채택하여, 최근 발매된 화려한 게임들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용자30.



    용자30은 Ys 시리즈의 유명한 몸통박치기 전투에 드래곤퀘스트를 연상시키는 용자 스토리를 제공하며 하나의 게임으로 4가지 종류를 즐길 수 있게 한다. 4가지의 게임 종류 모두 도트 그래픽으로 초라하게 보이지만, 용자30은 화려한 게임들에 일침을 놓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임이다.



  • 플레이어가 컨텐츠를 결정한다

    2~3분 내로 하나의 스테이지를 완료할 수 있는 용자30의 게임들은 하나의 스토리 30화를 모두 끝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시간 남짓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용량도 적고 할 것도 없는 게임이라는 평가가 있으나, 용자30은 플레이어가 게임의 플레이타임을 조절할 수 있다.



    용자30이라고 해서 마왕이 30명밖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특정 조건을 달성하면 스토리가 분기되는 구조를 채택하여 용자30 스토리에서 만나는 마왕은 총 50명이다. 또한 용자30의 모든 게임에서는 각 스테이지 달성 시간이나 조건에 따라서 특수한 호칭을 부여한다. 그 외에도 여신의 방이라는 게임 내 컨텐츠 도감도 있어서 모든 것을 파고들며 채우려면 수십 시간의 플레이타임이 필요한 게임이다.




    [ 도감은 언제 다 채우지 ]



    즉 정말로 라이트하게 맛만 보고 싶다면 반나절만 플레이해도 수박 겉핥기로 엔딩까지 볼 수 있지만, 용자30의 모든 컨텐츠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일주일은 가볍게 투자해야 할 정도로 플레이어 자신이 게임의 컨텐츠와 플레이타임을 결정할 수 있다.



  • 도트 그래픽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게임 내의 모든 캐릭터들이 큼직큼직한 도트로 등장한다고 해서 게임 자체가 단순한 것은 아니다. 게임중 입수하는 무기나 방어구를 갈아입을 때마다 도트로 이루어진 캐릭터들의 모습이 계속 변한다. 마치 MMORPG에서 장비를 바꿀 때마다 외관이 틀려지는 것과 동일하다.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아무리 장비품을 교체해도 의상이 전혀 바뀌지 않는 그래픽만 화려한 게임들에 비하면, 장비 하나에 외관이 변해가는 용자30쪽의 캐릭터가 훨씬 친근하게 느껴진다.




    [ 도트 캐릭터 주제에 장비 하나하나에 외관이 바뀐다 ]



  • 그래픽보다 재미로 승부한다

    용자30은 고사양 플랫폼인 PSP로 발매되면서도 일부러 도트 그래픽을 채용하고, 심지어 흑백 그래픽의 스테이지까지 출현한다. 그뿐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기존 유명 게임들의 패러디도 숨어 있다. 또한 각 스테이지의 엔딩에서는 개발자의 고뇌가 담긴 코멘트등도 들어가서 더욱 재미를 준다.



    특히 51명이나 되는 마왕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각 마왕에 다른 개성을 줘야 한다는 고민과, 한 번 등장했던 마왕을 색깔을 바꿔서 재활용하는 것을 반성하는 코멘트가 가슴에 와 닿는다. 이제는 당연하다고까지 불리는 몬스터 소스 재활용을 가급적 피하면서 창조의 고통을 겪는 개발자의 노력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세계를 구하는 용자가 시간제 노예 계약에 묶인다던가, 용자를 도와주는 여신이 사실은 엄청나게 돈을 밝힌다던가 하는 등 지금까지의 RPG에서 자주 봐 왔던 정형화된 공식들이 용자30에서는 모두 뒤집히는 재미가 있다.



    게임은 모방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재미로 만드는 것

    게임 산업 역시 하나의 경제적 활동이기 때문에 성공한 게임의 벤치마킹을 해서 상업적인 성공을 노리는 방법은 무조건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결과 새로운 게임이 나왔을 때 첫인상에 '이거 ~게임에 나왔던 거잖아, 굳이 해볼 필요는 없겠네'라는 평가가 가장 먼저 입에서 나온다면 그 게임은 재미면에서는 실격이다.



    눈과 귀가 즐거운 게임을 하면 누구나 기분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눈과 귀는 즐거운데 머릿속이 괴롭다면 그것은 게임이 아니라 고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보기만 좋고 마음이 편치 않은데 그게 무슨 재미있는 게임인가.



    최근의 고샤앙 플랫폼을 이용하여 용량 많고 화려한 그래픽으로 승부하는 게임들이 우르르 나오지만, 정작 마음을 잡아 끄는 게임을 찾기는 쉽지 않다. 상업적인 게임 산업에서 게임이란 재미가 우선이라는 순수한 이상론을 펼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우스울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선가 한 번쯤 본 비슷비슷한 게임들이 넘쳐나는 최근의 게임 시장에서, 일부러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는 고전 그래픽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게임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며 게임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을 외치는 용자30에 기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이다.




    [ 마왕을 쓰러뜨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