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32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훨씬 낙관적입니다"


국내 기술로 휴대용 게임기를 만들겠다는 다양한 시도들이 모두 물거품이 된 지금. 대통령이 우리는 이런 것 하나 못 만드냐며 쉽게 던지는 말 뒤로, 수 많은 기업들이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 도전하고 또 실패해왔다.


그나마 국산 휴대용 게임기로 인정받았던 것은 지금은 사라진 게임파크의 GP32. 2001년 출시된 이 모델은 당시 휴대용 게임기 중 최고의 성능으로 주목받으며, 에뮬레이터 등 다양한 부가기능과 개발툴을 오픈하는 정책으로 호평을 받았다. 지금 게임파크는 사라졌지만 그 기술과 정신은 얼마전 GP2X Wiz 모델을 발표한 게임파크홀딩스가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한 곳 더 있다.


게임파크의 창립자이자 휴대용 무선 네트웍 게임기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전형근 부사장이 게임파크 시절 네트워크 서버를 개발하던 조정현 대표와 손을 잡고 2007년 새롭게 시작한 '겜브라스'가 그 곳.


얼마 전 '차세대 휴대용 게임기 다중 플랫폼 구축'과 관련된 국책 사업 업체에 선정되면서 '우리가 진정한 명텐도'와 같은 기사로 조명을 받기도 했던 겜브라스는 현재 GP32를 잇는 새로운 모델의 국산 휴대용 게임기 nXGP의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 ▲ 겜브라스 조정현 대표 ]



= 게임파크에서 홀딩스가 분사해 나가고, 다시 겜브라스가 설립되었습니다. 두 회사 모두 게임파크의 맥을 잇는 회사인데, 홀딩스는 이번에 새로운 모델을 발표하고 또 깜빡이 영어 학습기 판매로 꽤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 지금 국내에서 휴대용 게임기 하는 곳이 유일하게 두 곳밖에 없는데, 잘 되야죠. 홀딩스가 잘 되서 휴대용 게임시 산업이 커져야 선의의 경쟁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Wiz 하나 가지고 있어요.



= 그간의 히스토리가 궁금합니다. 대표님은 어떻게 겜브라스에 합류하신 건가요.

▲ 2001년 GP32 시절에 게임파크에서 서버개발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잠시 게임파크를 떠나 온라인 캐주얼게임 개발을 하다가 이번에 정형근 부사장님이랑 한 번 뭉쳐보자 하게 되었죠. 정형근 부사장님은 10년 청춘을 여기에 다 바치셨으니까요.

2007년 3월에 다시 시작해서 '딩키' 모델을 만들었는데 인증 문제도 있고 시장성 문제도 있어서 출시를 못했어요. 그 다음에 XGP 모델을 만들었는데 출시를 못했고요. 그렇게 경험이 쌓이다보니까 같은 가격에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 제품이 이번에 출시되는 모델이고요.




[ ▲ 휴대폰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딩키 모델 ]



= 한국 시장이 휴대용 게임기를 만들어서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시각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10년 넘게 꾸준히 이 일에 몸을 담고 계시네요.

▲ 오히려 좋은 일이 계속 벌어지더라고요. 닌텐도DS가 장동건씨가 나와서 광고를 하더니 게임은 애들한테 나쁜 거라는 인식만 있었는데 휴대용 게임기를 많이 사는 분위기가 되었어요. 옛날에는 게임기 만든다고 하면 주변 분들이 왜 애들한테 좋지도 않을 걸 하냐 그랬는데 이제는 너 괜찮은 일 하는구나 그러더라고요. 1년만 더 해보자 그랬는데 작년에는 또 아이팟 터치가 나와서 휴대용 게임 저변이 넓어졌어요. 또 개발자들도 애플 앱스토어에 관심을 가지면서 휴대용 게임 개발에 관심도 가져주시고요. 그래서 또 1년만 더 해보자.

이집트에서 와서 중동권에 가지고 가면 한 달에 몇 백대 소화하겠다 그래요. 이런 글로벌한 수요도 있어서 앞으로 백만 대, 천만 대는 어려워도 십 만대는 키워나갈 수 있을 거다 하고 낙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 소프트웨어가 뒷받침되지 않는 게임기가 성공하겠느냐는 시각이 있습니다. 어떻게 접근하고 계신가요.

▲ 저희 개발툴을 사용하면 다른 플랫폼으로 게임을 개발하시는 분들이 크게 힘 들이지 않고도 게임을 포팅할 수 있습니다. 기존 휴대폰 게임을 예로 들어 3시간에서 하루 정도면 포팅이 되게 툴을 개발했어요. GSM이나 CDMA폰은 1달이 걸리는데 API모델로 늦어도 3일 정도면 돌아가게 만들 수 있죠. 개발자 분들이 크게 품을 들이지 않아도 되게끔 했습니다.

아이팟 게임을 우리 게임기에 쉽게 포팅할 수 있는 것도 준비중입니다. 일반 PC에서 굉장히 저렴하게 아이팟 게임을 포팅할 수 있는 것이죠. 아직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성과도 거뒀고요. 그래서 개발자 분들이 아이팟 게임을 만드시면 3, 4일 정도 다듬어서 우리 기기로도 출시할 수 있는 수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픈마켓 형태로 수익을 공유하는 것도 준비중입니다.




[ ▲ GP32를 잇는 XGP 모델. 당시 생산된 3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기기다. 지금도 구동된다 ]



= 멀티미디어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 사실은 멀티미디어 기기로 보이기가 싫어요. 1번이 게임기. 2번이 멀티미디어기기입니다. 게임이 없으니까 라디오도 넣고 DMB도 넣고 하면서 양해를 구하는 거죠. 저희는 게임기로만 하고 싶어요. 욕을 먹더라도. 물론 멀티미디어 성능을 넣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게임기다보니까 버튼도 붙어있고 해서 PMP보다는 군더더기가 있고요.



= 얼마 전 글로벌게임허브센터 개소식에서 이번 모델을 시연하는 장면이 GP32 팬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 시연이 가능하겠냐 하길래 하게 되었죠. 제품이 이미 완성단계로 금형이 들어가 있거든요. 다음 달에 100대 정도 테스트용으로 시생산을 할 계획이고요. 노력해서 올 해 안에는 출시를 해볼까 합니다. 천천히 가려고 그래요. 오류 없게 완성도를 높여야죠.


= 차기 모델의 스펙은 결정되었나요.

▲ 사업 방향에 따라 가변성이 있긴한데 일단 CPU는 ARM11 이고 LCD는 480x320에 3.5인치 터치스크린을 사용합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걸 내놓자고 해서 자체 심사도 굉장히 강화했습니다. 옛날에는 출시하는 것 자체에 급급했거든요. 요즘 마케팅을 안하고 있는 것도 내부적으로 탄탄해졌을 때 하려고 그런 겁니다. TU미디어와 같이 사업하는 것이 있어서 nXGP 말고 다른 기기를 하나 더 제작할 수도 있습니다.



[ ▲ 현재 개발중인 nXGP ]



= TU미디어와 함께 하고 있는 국책사업은 어떤 내용인가요.

▲ 이름은 '차세대 휴대용 게임기 다중 플랫폼 구축' 사업입니다. 과제는 4월부터 시작했는데 자바, 위피, GVM, 안드로이드, 플래쉬 이런 거예요. 그런데 기기가 필요하거든요. 마침 저희는 그 전부터 하고 있던 일이 게임기 만드는 일이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국책 사업이라지만 원래 하던 일을 그냥 계속 하고 있는 셈이죠.

사실 이게 만만한 사업은 아닙니다. 기기 가격이 20만원 정도 하면, 십 만대를 팔았다고 해도 200억 매출이거든요. 일단 저희는 개발파트니까 개발자들이 쉽게 쓸 수 있고 사용자가 만족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죠.




= 97년부터 계속해서 휴대용 게임기를 제작해오셨는데 그러면서 얻은 교훈이랄까 아니면 이건 이렇게 해야되는구나 싶은 것들이 있을까요.

▲ 이제는 워낙 노하우가 쌓여서 기기 만드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아요. 게임기 만드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게임 개발자 분들이 좋은 게임을 만들어 주실까. 어떻게 하면 사용자들이 많이 구입해주실까. 닭과 달걀같은 건데 좋은 게임이 많으면 많이 구입해주실 거고, 많이 보급이 되어있으면 개발자 분들도 관심을 가져주실테고.

오히려 휴대용 게임기 저변이 넓어지고 개발자 풀이 늘어난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겁니다. GP32 때는 게임기 사용경험도 없고 개발자도 없던 시절이니까 그 때에 비하면 인프라는 다 되어있고 이걸 어떻게 엮느냐를 고민하고 있으니까요.




[ ▲ 일반적인 휴대용 게임기의 형태로 8월 시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



경기도 성남의 한 오피스텔에 위치한 사무실에 직원도 10명을 손꼽을 정도로 겜브라스는 작은 회사였다. 한 쪽 사무실에는 GP32를 개발했던,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휴대용 게임기 개발자 전형근 부사장이 수많은 전선과 부품들 사이에서 씨름하고 있었다. 인터뷰 약속을 잡은 조정현 대표는 방금까지도 코딩에 집중하느라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했다.


겜브라스가 만들고 있는 새로운 국산 휴대용 게임기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GP32는 호평을 받았으나 시장의 차가운 냉대 속에 잊혀갔다. 게임파크는 홀딩스로 쪼개지고 결국 사라졌다. 새롭게 겜브라스라는 이름으로 모여 1년에 하나씩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냈지만 시장에 선을 보이지도 못했다. 그들이 걸어왔던 10년의 세월은 어떻게 보면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휴대용 게임기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10년이 넘는 세월을 고스란히 바친 사람들 앞에서, 기자는 지금 섣불리 그들의 성공이나 실패를 이야기하지 않겠다. 실패의 연속을 경험했던 이들 스스로가 오히려 예전보다 상황이 좋아졌다며 낙관하고 있으므로.


그리고 우리나라 게임계가 작지만 소중한 한 발자국을 그렇게 내딛고 있는 것은,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 고집 센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