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시작은 와우였습니다.

인벤의 커뮤니티 중 하나인 와우 인벤을 방문해보신 분이라면 익히 알고 있겠지만, 얼마전부터 와우에서는 친구찾기 게시판에서 최고 추천수를 받은 유저에게 TCG 부스터 박스를 선물로 주고 있죠.






* TCG란?


Trading Card Game의 약자로 카드에 표시된 숫자나 설명, 형태에 따라 일정한 전투 규칙 안에서 서로의 실력을 겨루는 보드 게임의 일종이다.

매직 더 개더링(Magic The Gathering)이나 유희왕, 컬트셉트, 판타지 마스터즈 등 여러가지 종류의 TCG 게임이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TCG 카드 게임보다 애니메이션이나 일종의 수집을 위한 컬렉션 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선물로 나가는 TCG 박스에서 유저들에게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박스 안의 카드들이 아니라, 전리품인데요. (TCG의 게임 방식이나 규칙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특성상 아직은 어쩔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흔히 루트 카드(Loot Card)라고 불리는 이 전리품 카드는 부스터 팩에 낮은 확률로 포함되어 있고, 와우의 펫이나 탈 것, 재미있는 장신구 등 평범한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희귀한 보상을 게임 내에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와우 유저들에게 인기가 상당합니다.

인벤에 서식하는 기자들치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만레벨 캐릭터 하나 없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선물로 발송되는 부스터 박스를 바라보면서 여러 명이 군침을 흘렸더랬습니다. "내가 뜯으면 유령호랑이가 나오지 않을까? 나도 한 외모하는데 올려서 추천을 구걸해볼까?"





게시판에서는 다른 유저들이 루트 카드를 자랑하는 걸 봐도 그냥 무덤덤합니다. 내 앞의 현실같이 안 느껴지거든요. 그러나 유저들에게 발송할 선물로 잔뜩 쌓여있는 TCG 박스를 이리저리 오가며 슬쩍 곁눈질하거나 한번씩 호기심에 구경하다 보면 왠지 모를 호기가 솟아오르게 됩니다.

견물생심이라고 확률은 낮아도 와우하는 모든 게이머들의 소원이라는 탈 것-유령호랑이를 얻을 수도 있으니, 와우를 플레이하고 있는 유저라면 왠지 TCG카드의 포장지 한개만 뜯어도 유령호랑이가 반기며 달려올 것 같은 Feeling을 느끼게 됩니다.

"저 중에 하나쯤은 유령호랑이가 있겠지... 그래. 시대를 선도하는 차가운 도시의 게이머에게 TCG 카드 하나쯤 지를 여유는 있어야 되는 것 아닐까? 서민 게이머들의 부러운 시선속에 유령호랑이를 타고 푸른 아제로스의 초원과 달라란 어스름 거리를 누비는 나를 생각해봐."


결국 기자 중 몇몇이 질렀습니다. 그것도 많이...




[ 이 여파로 당분간 점심을 굶어야 한다는 모 기자... ]




어떤 루트 카드가 나왔냐구요?

참고로 왜 그런지는 몰라도 인벤 기자들 치고 아이템 운이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공대장으로 두달이 넘는 기간동안 성공적으로 레이드를 올킬하면서도 먹고 싶은 아이템이 단 한번도 나오지 않은 예도 있을 정도.




[ 이미 예상된 그들의 최후 ]



그렇게 몇달의 용돈을 대가로 아무도 안 사가서 발에 채인다는 고블린 검보 카드 십여장과 함께 좌절해 있던 기자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아도느니 카드인데... 어차피 다른데 쓰지도 않을건데 장식으로 쓰느니 이번 기회에 TCG 게임을 해볼까? 이것도 게임인데..."


그렇게해서 과거 이리저리 TCG 게임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기자들을 주축으로 인벤의 TCG 팀이 급조되었습니다.

사실 지금에서야 당당히 밝히지만 애초부터 전리품 카드 따위는 목표가 아니었고, 인벤을 방문하는 게이머 분들에게 좀 더 다양하고 넓은 게임의 세계를 소개해드리고 싶다는 순수하고 도전적인 기자 정신의 발로였습니다.

TCG에 익숙한 기자들이라고해도 와우 TCG는 기존의 TCG와는 또 약간 다릅니다. 자원, 마법, 캐릭터 정도로 구성된 다른 TCG와 달리 와우의 TCG는 퀘스트, 무기, 방어구, 영웅, 동맹 등이 존재합니다. 물론 가장 큰 특징은 무기나 퀘스트, 방어구 등이 이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세계 안에 구현된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죠.

한때 모든 도적들의 꿈이었던 아지노스의 쌍검이 에픽 카드로 등장하고, 레지널드 윈저같은 NPC들도 카드로 나옵니다. 마그니 브론즈비어드나 일리단과 같은 영웅들도 등장하죠. 와우의 팬이라면 카드만 봐도 떠올릴법한 것들로 카드들이 만들어집니다.

어쨌거나 평소 와우에 익숙한 기자들이 TCG 팀을 이뤘으니 잘 모르는 카드의 규칙보다는 평소 선호하는 취향에 따라 덱(Deck)을 구성했습니다. 다른 TCG는 해봤으니 일단 게임을 해보면서 익숙해지자는 생각이었죠. (덱 - Deck 이란 자신이 게임에 사용할 영웅, 동맹, 기술, 장비 등의 카드를 모아놓은 세트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영웅카드를 포함하여 61장으로 구성됩니다.)


그렇게 그들이 테이블에서 자신들의 덱을 들고 만났습니다. 순간 인벤의 회의실은 마치 O.K 목장의 혈투가 벌어지는 순간처럼 비장한 음악이 감도는 느낌이었죠. 제 1차 와우 TCG 대결! 스타트!






그들의 사례 1.

"XX님. 전사 덱이라면서 무기하고 방어구 카드는 어디 있어요?"

"없는데요. 전 장비따윈 필요없는 최강의 전사입니다. 생긴 것만 봐도 오우거 따윈 눈빛만으로 제압하게 생기지 않았나요? 그리고 전사는 파티의 중심! 내 동맹들이 싸워줄 겁니다."

"와우 TCG에서 무기없는 영웅은 아예 공격을 못하는데? 두드려 맞아도 반격도 못해."

"......"


그들의 사례 2.

"XX님. 사냥꾼 덱이라면서 원거리 무기는 왜 안 꺼내요?"

"원거리 무기 없는데요? 대미지도 약하던데, 빼버렸어요. 전 소환수와 함께 싸우는 근접 냥꾼입니다. 렉사르와 미샤가 제 롤 모델이죠."

"그러면서 왜 기술 카드는 죄다 원거리 보너스 카드에요? 그리고 원거리 무기는 반격 안 받잖아."

"......."






[ 체력 카운터는 TRPG용 주사위로... ]




몇번 진행해본 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TCG 한판이 20분, 길어야 30분 정도면 끝난다는데 서로 카드를 열심히 내려놓아도 3시간이 넘도록 공격만 오고갈 뿐 게임이 안 끝나는 사태가 벌어졌거든요.

물론 중간 중간 카드들의 해석이나 용어에 대해 갑론을박하느라 시간이 길어지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블리자드의 TCG를 국내로 가져와 번역하게 되면서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는 설명들이 좀 있었으니까요. 한글로 적혀 있고 단어는 알겠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쓰는 것인지 롤북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TCG가 활성화되기힘든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이런 생소함과 어려운 접근성이 아닐까 합니다. 게임에 익숙한 유저들조차 TCG는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보통은 카드에 적힌 가위바위보나 주사위 정도만 사용하니까요. TCG라는 게임문화 자체가 한국에서는 아직 어색합니다.

그리고 카드는 적지않게 팔렸더라도 게임의 규칙은 보급되지 않았습니다. TCG의 규칙을 이해하고 이런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즐겨줄 어른들도 없을 뿐더러 모일 자리도 없습니다. 없는게 없을만큼 넓다는 서울에 제대로된 TCG 카페는 손에 꼽을 정도, 보드게임 카페까지 합해도 많은 수라고 보긴 힘듭니다.

가장 많이 팔렸다는 모 TCG 카드는 규칙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이 애니메이션을 먼저 보고 단순히 호기심과 컬렉션용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현재까지 상당한 수가 팔린 와우 TCG는 루트 카드를 얻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니었으니까요.

한국에서 가장 큰 구매층인 아이들의 인식에서 바라보면 까다로운 규칙을 가진 TCG 카드와 그냥 그림만 그려져 있는 포켓몬스터의 스티커와는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이지요.

어쨌거나 30분에 걸쳐 힘들게 꺼내놓은 여러 동맹들이 성기사의 신성화 한방에 모조리 묘지로 직행하기도 하고, 영웅으로 공격해보겠다고 꺼낸 레어 무기를 전사가 파괴해버리기도 하면서 인벤에서는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 규칙이 중요한가요. 아직 규칙도 잘 모르고 게임을 진행하는 것도 서툴지만 TCG를 통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지른 카드의 가격을 보상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꼭 온라인 게임만 게임은 아니지요. 아무리 목놓아 불러봐도 돌아오지 못할 부스터 박스의 값이 아까운 것은 절대 아닙니다.




[ 어허~ TCG 하는 사람 어디 갔나? ]




[ 치열한 전투의 와중에 쓰러지는 동맹들...을 기록한 종이 ]




PS. 나중에 인벤의 기자들이 짠 덱을 와우 TCG에 밝은 모 유저에게 문의해본 결과 이런 답변을 얻어냈습니다. "덱이 왜 이래요? 필수 카드들이 하나도 없네. 이걸로 게임이 안될텐데... 루트 카드 노리다가 지뢰 밟으셨구나? 덱 새로 짜셔야 되요." 마치 그 유저의 쪽지에서 ㅋㅋㅋㅋ 라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