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게임을 오래하니! 나중에 커서 게임 박사 되려고 그래?”

게임하느라 식사를 거를 때 어머니들이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여주며 하시던 이 말. 앞으로는 머쓱하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게임학 박사’가 출현했기 때문입니다

국내 1호 게임학 박사로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에 몸살을 앓을 지경인 윤형섭 박사가 그 주인공입니다. 논문의 제목은 “MMORPG(다중온라인롤플레잉게임)의 재미 평가 모델에 관한 연구”.

‘게임학 박사’라는 타이틀에 대한 반응은 다양합니다. ‘사실 게임하면 내가 박사지’라는 농담 섞인 반응에부터 ‘MMORPG 연구로 박사를 받았으면 와우 전 직업 만렙 달성했을까’와 같은 오해까지.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게임學’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윤형섭 박사는 어떻게 게임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되었는지, 또 MMORPG의 재미에 대한 그의 평가방법은 무엇인지 들어보기 위해 인벤이 윤형섭 박사를 만나보았습니다.




[ 윤형섭 게임학 박사 ]




= 연구 때문에 게임을 많이 하셨겠어요.

"재미 연구를 하다보니까요. 너무 게임에 빠지면 ‘이래서 재밌지’하는 주관에 갇히게 되거든요. 평가는 객관적이어야되기 때문에 일부러 논문 쓸 때는 하지 않았어요. 시간도 없었고. 대신 PC방에 가요. 와우 하는 사람 찾아서 컵라면 하나 사주면서 ‘제가 좀 볼게요’하고 구경하죠. ‘신경 쓰지 말고 계속 하세요’ 하면서요.

아니면 롯데월드를 가서 놀이기구를 같이 탑니다. 설문조사로 알 수 없는 인터뷰의 느낌이 있거든요. 학교도 가고 지하철에도 타서 요즘 무슨 게임하니, 어떤 아이템이 좋으니, 이벤트는 뭘 좋아하니 물어보고 조사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보거든요. 그런데 놀이기구는 어차피 4, 50분 기다리잖아요.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면서 너 게임 뭐하니 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되요. 아저씨가 게임한다 하면 너무 재밌어 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무료 인터뷰도 많이 했죠.

우리 아들이랑은 게임을 하죠. 중3인데 잘해요. 4살 때부터 강제로 시켰거든요. 플스1 나오자마자 사주면서. 그 때는 너무 어리니까 ‘아빠 점프가 잘 안 돼요’ 그랬죠. 예전에는 계속 제가 이겼는데 요즘은 뭘 해도 집니다. 스타는 잽도 안 되고, 피파는 5:0으로 만들고 시작해야 비슷해요."




= 4살 때부터 게임을 시키는 아버지는 흔하지 않은데…

"지금 집에 플스1, 2, DS, PSP, Wii 이렇게 있는데 아들은 좋아하더라고요. 한 반에 콘솔이 두 개 있는 아이들이 잘 없대요. 사실 저희 집은 PC방이나 다름없어요. PC가 세 대니까 아들보고는 PC방 가지 말고 집에서 하라고 하죠. 담배도 있고 나쁜 형들도 있으니까 ‘여기서 애들 데리고 해. 아빠가 라면 끓여줄께’. 그렇게 하면 오히려 잘 안 해요. 최근에 산 플스2 타이틀은 아직 뜯지도 않고 있거든요. 왜 안 해 하면 ‘요즘은 피파밖에 안 해요’ 그래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게임했는데요 뭘. 상관없어요. 게임을 늦게 하는 사람들이 중독되는 거예요. 대학생 때 MMO 처음 해본 사람들이 게임에 빠져서 휴학하고 ‘그래도 300은 건졌네’ 하는 거죠."








=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하셨어요?

"제가 초등학생일 때는 밤늦게까지 하이스코어를 찍지 않으면 집에도 안 가고 그랬어요. 모든 기계에 이름을 올리고 동네 오락실을 모두 정복하면 옆 동네, 옆 옆 동네까지 원정을 다녔거든요.

제가 돌이켜보면 게임을 굉장히 잘했어요. 종로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였는데, 그 때는 오락기가 60대 있는 곳이다 하면 30대가 갤러그였어요. 모두 갤러그를 하는데 제가 교복입고 들어가면 사람들이 뒤로 쫙 모이곤 했죠. 100만점 180만점 이렇게 올리곤 했으니까요. 제가 하는 화면을 보려고 의자를 밟고 올라가서 보고 했던 기억이 나요.

한 번은 세운상가에서 갤러그 100만대 돌파기념 대회를 열었어요. 그게 아마 국내 최초 대회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친구가 나가자 그래서 준우승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잘할 줄 몰랐죠. 그런데 2등을 한 것도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진 거예요. 다 떨어져나가고 두 명이 남았는데 세 시간을 할 지 몰랐던 거죠.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야, 너 안가냐’ 하면서 이리 꼬고 저리 꼬고 그러다가 결국에는 뛰쳐나갔죠."



= 처음으로 게임이라는 학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셨어요.

"호서대학교에 게임공학 전공이 있고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 게임전공이 있고 한데, 상명대학교에 2005년에 국내 최초로 게임학 전공이 생겼어요. 당시에 6명이 입학해서 지금은 15명이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운이 좋게 제가 먼저 학위를 받게 된 셈이죠.

물론 그 전에도 게임과 관련된 논문들은 이었어요. 2003년에는 심리학에서 게임을 주제로 연구한 논문이 나왔고 경영학, 과학사, 영상학 쪽으로도 있죠. 해외 쪽에도 이런 게 있냐 물어보시는데 조사는 해보지 않아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핀란드, 덴마크,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있다고는 들었고요. 제가 가는 게임 연구 뉴스그룹에 물어보니까 ‘한국에서도 이런 게 있냐’하면서 굉장히 놀라더라고요."








= 게임학이라는 단어가 생소한데, 어떤 분야를 연구하는 학문인가요.

"이걸 제가 정의하는 게 맞을지는 모르겠네요. 위키디피아에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게임을 대상으로 분석하는 학문으로 되어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게임에 대한 연구 모두를 게임학이라고 칭해야 하지 않나. 인지과학, 심리학, 인문학, 사회과학 이런 것들도 다 포함시켜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 논문의 주제를 MMORPG의 재미 평가 모델로 잡으셨어요. 특별히 MMORPG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게임학을 하려는 사람이 무엇을 할 것인가. 게임의 핵심은 재미거든요. 그런데 재미를 하지 않고 언저리로 게임 커뮤니티, 게임 인터페이스 이런 식으로 피해가긴 싫었어요. 제가 기능성 게임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는데 그쪽으로 해볼까도 했는데 기존 연구가 너무 빈약하더라고요. 게임의 긍정적인 영향을 모아서 써볼까 했더니 그건 너무 방대하더라고요. 그래서 게임의 본질은 재미인데 본질을 피해나가는 건 치사하다. 부딪혀보자. 누군가 언젠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해보지. 그런 생각을 했죠. MMORPG를 선택한 건 게임의 재미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다양한 재미를 가지고 있어서였고요."




[ 윤형섭 박사가 도출한 MMORPG의 재미 평가 요소들 ]




= 게임이 왜 재미있는지 이유를 말하라면 쉽지 않거든요. 재미의 요소들은 어떻게 도출하셨나요.

"게임이 재미있으려면 사운드도 좋아야 되고 인터페이스도 좋아야 되고 그랬단 말이죠. 예를 들어 캐릭터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그런 연구가 이미 있거든요. 하지만 ‘직업이 20개 있습니다’하는 게임이 재미있는 건 아니에요. 그것 하나가 아니란 거죠.

여러 가지 게임을 모델로 해서 20개 정도의 재미요소를 도출해냈어요. 크게는 감각적 재미, 도전적 재미, 상상적 재미, 사회적 재미의 4가지 큰 범주로 나눴죠.

이 중에 빠진 재미요소들도 물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익명성이라는 요소가 있어요. 굉장히 중요하죠. 모르는 사람이랑 채팅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다는 거죠. 하지만 모든 MMORPG가 익명성을 보장합니다. 재미요소는 되겠지만 평가요소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죠. 현금거래가 되는지 아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화투 치는 것 보다 돈 내고 하는 게 더 재밌거든요. 하지만 우리나라 게임들은 거의 다 이 부분이 가능해서 굳이 넣을 필요가 없었어요."




[ 설문조사를 통해 게이머들의 게임 평가를 받았다 ]



= 만들어진 재미 평가 모델로 MMORPG들을 평가해보셨을텐데요.

"사실 기준을 도출하는 게 가장 중요한 작업이었어요. 6년 동안 이것만 고민했죠. 그리고 하이텔 게임제작동호회 시절부터 활동해서 게임개발자협회를 만든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전문가 그룹의 자문을 구해서 이런 요소들에 가중치를 부여했습니다. 정성적인 분석을 정량화하는 AHP라는 방법론을 사용해서 게이머들의 평가를 수치화했더니 와우가 1등, 아이온이 2등, 리니지2가 3등이 나왔죠.

물론 세 개의 게임에 평가 모델을 적용해봤다고 이 모델이 검증된 것은 아닐 거예요. 그래서 다른 분들도 이 모델을 한 번 사용해보셨으면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재미 평가 모델이 점점 정교해지겠죠."



= 이번 연구가 앞으로 어떤 용도에 활용될 수 있을까요.

"우선은 정량적으로 게임의 재미가 얼마나 되는지 표시할 수 있죠. 와우가 재밌냐 아이온이 재밌냐 백날 싸워봤자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거든요. 너 와우 해봤어? 만렙은 찍었냐? 이런 식이 되는데 하나의 모델을 기준으로 점수를 낼 수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100명 정도를 샘플로 해서 한 것이면 충분하지 않나.

두 번째는 그 게임의 어느 부분이 더 재미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와우는 퀘스트나 스토리가 좋아서 도전과제 요소의 점수가 높습니다. 거꾸로 이 게임은 무엇이 부족한지도 알아낼 수 있겠죠. 소속감이나 공동체 부분이 부족하다던가. 오픈베타를 한 게임이 이 모델로 조사를 하면 지금 우리는 ‘탐험 요소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내려지면 빨리 맵을 만들어야겠다 하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거죠. 기획자 입장에서는 설계요소에서 빠뜨리게 되는 부분을 체크할 수도 있고요.

궁극적으로는 게임 디자이너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또 산업에 접목이 되어 써먹을 수 있는 이론이 됐으면 하고요. 고정된 이론이 아니니까, 각 게임사에서 이런 항목은 빼고 이런 항목은 추가하는 식으로 발전시켜서 쓸 수도 있을 거예요. 대항이면 탐험과 교역이 중요하니까 가상화폐교역에 가중치를 더 주거나, FPS는 타격감이나 맵에 가중치를 더 줄 수 있겠죠."








= 앞으로도 계속해서 게임 연구를 하실 계획인가요.

"그래야 되지 않을까요? 박사는 이제 혼자 공부하라고 주는거니까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주목받고 있는데 여기도 핵심은 재미예요. 재미의 요소가 뭔지 본질이 뭔지 모르면 엔터테인먼트를 할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반대로 게임의 재미요소 중 몇 가지 원리들은 영화나 드라마에도 적용할 수 있을 거예요. 이런 연구가 몇 가지 이미 있거든요.

요즘은 유머와 웃음을 연구하고 있어요. 재미가 있으면 웃을 수도 있는데 웃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스타크래프트는 재미는 있지만 하면서 웃지는 않아요. 웃음을 유발하는 종류, 유머의 종류, 메커니즘은 무엇인지 연구하고 있어요. 어느 정도 완성되면 게임에도 접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게임학 학위를 받는 다른 분들도 계속 나오겠죠?

"잘난 척 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게임학 박사라는 이름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줬으면 좋겠어요. 저 말고도 게임을 연구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거든요. 너무 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이 미안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해요. 저 때문에 2호 3호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가려질까봐 걱정도 되고요. 그래서 게임학 박사 1호라는 이름보다는 게임에 대한 재미 연구 자체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윤형섭 게임학 박사 약력

- 1995~1999 : 한국정보문화진흥원
- 1999~2000 : 게임산업지원센터 설립멤버, 게임아케데미팀장, 산업지원팀장 겸임
- 2000~2002 : 상명대 디지털미디어대학원 게임디자인 석사
- 2002~2003 : 위자드소프트 전략사업부장
- 2003~2005 : 네오리진 게임사업부 개발이사
- 2005~2008 : 광운대 정보통신대학원 교육용게임학과 겸임교수
- 2006~2008 : 부룩소 연구소장
- 2009~현재 : 서강대 게임교육원과 숭의여대 강의
- 2009. 8 박사논문 : MMORPG(다중온라인롤플레잉게임)의 재미 평가 모델에 관한 연구 발표




※ 논문의 내용을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윤형섭 박사의 논문 ‘MMORPG(다중온라인롤플레잉게임)의 재미 평가 모델에 관한 연구’의 국문요약을 소개합니다.


MMORPG의 재미 평가 모델에 관한 연구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온라인 게임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집단 경쟁 등 스탠드 얼론(stand alone) 게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게임 플레이의 경험 중 가장 핵심적인 주제인 재미에 대한 연구는 휴리스틱한(heuristic) 연구에 머물고 있다. 본 연구는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게임플레이의 재미에 대한 과학적인 평가를 위해 MMORPG의 재미 평가 모델을 제시하고, 그 유용성을 검증하는 데 목적이 있다.


본 연구는 동기이론, 몰입(Flow) 이론, 기존의 문헌연구와 설문조사를 통하여 온라인 게임의 핵심적인 재미 요소를 도출하였다. 도출된 20여개의 요인들을 매트릭스 분석을 통해 범주화하고, Ermi & Mayra(2005)의 게임플레이 경험 모델에 통합하였다. 다양하고 정성적인 평가기준을 체계화하기 위해 AHP(Analytical Hierarchy Process) 이론에 입각하여 감각적 재미, 도전적 재미, 상상적 재미, 사회적 상호작용의 재미의 4개 측면을 포함하는 계층분석도를 구성하였고, 게임업계 전문가들의 검토와 중요도 평가를 통해 MMORPG의 재미 평가 모델을 제안하였다.


제안된 모델에 의해 구성된 설문문항을 3개 MMORPG를 즐기고 있는 이용자 87명을 대상으로 평가한 결과, WOW, Aion, Lineage2 순으로 각각 75.247점, 68.649점, 62.205점을 얻어냈다. 이러한 평가 결과는 현재 MMORPG 중에서 가장 높은 시장점유율과 매출 실적이 좋은 WOW를 가장 재미있는 게임으로 선정하였고, Aion과 Lineage2도 현재의 시장 점유율과 매출 실적과도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로 본 연구에서 제안된 MMORPG의 재미 평가 모델의 유효성이 검증되었다.


본 연구의 결과는 가장 재미있는 게임의 선정뿐만 아니라 각 게임의 재미 요소별 강약점을 분석하여, 왜 어떤 게임은 성공적이며, 다른 게임들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이해를 제공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에서 제안된 MMORPG의 재미 평가 모델은 어떤 게임이 가장 재미있는 게임인지를 선정하는데 활용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보다 구체적인 재미 요소벌 분석을 가능하게 하여 보다 재미있는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장르까지 확장하여 활용하기 위해서는 후속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