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객원 필진으로 활동 중인 블루파일님의 투고글로, 본 글의 내용은 인벤의 논조 및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게임 업계에 관심이 많은 한 고등학생으로부터 쪽지를 받았다. ‘게임 평론가에 뜻을 두고 있는데 직업으로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내용이었다. 제법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로 (평론가의 위치가)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는 희망적인 관측도 담겨 있었으니까. 허나 유감스럽게도 “어떻게” 좋아진다는 것인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직업으로서의 게임 평론가라면 당연히 ‘전업’의 의미일 터. 쪽지를 받고 보니 요즘 중고등학생 중엔 게임평론가를 꿈꾸는 이들이 제법 있을 법했다. 그래서 필자의 평소 생각을 풀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업계 이야기를 조금씩 건드릴 테지만 수위 조절은 할 예정.



- 게임을 잘 하면서(알면서) 글까지 잘 쓰는 사람


가벼운 여담으로 글을 시작하겠다.


세상에는 게임을 잘 하거나 잘 아는 이들이 많다. 마찬가지로 글을 잘 쓰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게임을 잘 하면서(혹은 잘 알면서) 글까지 잘 쓰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필자가 요즘 ‘두 가지 모두에 능숙한 사람’을 물색 중인데 난항이 계속되고 있다. 호소력 있는 필력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자기 생각을 어색하지 않게만 풀어내도 되는데 그 정도도 찾기 힘들다. 원하는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운 건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게임 분야에서는 특히 심한 느낌이다.


‘어째서 그럴까’를 두고 지인들과 말을 섞던 차에 결론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이 글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 게임의 포인트는 ‘하는 것’이지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 게임의 주 소비층이 비교적 어리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을 게다.






- ‘소수’의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평론가


본 주제인 ‘게임 평론가’ 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자. 영화 평론가, 대중문화 평론가, 미술 평론가, 음악 평론가 등등 세간에 존재하는 평론가 종류는 많다. 그러나 유독 ‘게임 평론가’는 보이지 않는다.


새삼스런 얘기지만, 모든 분야를 아울러도 직업으로서의 평론가는 극히 소수만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때때로 ‘평론가가 과연 필요한지’ 의구심을 품는다.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든 산물을, 얄팍한 지식을 내세워 글씨 몇 자로 후벼 파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비난을 덧붙여.


그렇잖아도 좁았던 평론가의 입지는 인터넷의 활성화로 더욱 좁아지는 추세다. 발언대가 점점 늘게 되면서, 팬들은 자신의 블로그나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자주 목소리를 낸다. 개중에는 전문가 뺨치는 식견을 자랑하거나 진짜 전문가이면서 팬인 사람들도 많고, 이들의 이야기 수준은 평론가 못지않다. 더 큰 위기는, 대중이 평론가들의 의견에선 공감대를 쉬이 찾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학술 분야라면 모를까, 대중문화를 상대해서 역사가 어떻고 철학이 어떻고 해봐야 설득력이 생길 턱이 없다.


이런 판국이니 어쩌면 마이너한 ‘게임’을 대상으로 한 평론가를 찾는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사실 ‘평론가의 필요성’을 주제로 설을 푸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본다. 아쉽지만 본 글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으므로 눈물을 머금고 논란을 뒤로 하자. 순수하게 평론가 자체만을 바라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니까.






- 평론가의 자격 요건


필자는, ‘평론’은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평론이란 ‘자신이 생각하거나 경험한 유무형인 사물의 가치를 논하는 일’이다. 누구나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생각을 논하고자 하며, 이것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다른 사람의 얘기로써 간접 체험코자 하는 사람들도 많다. 평론을 하려는 사람도 보려는 사람도 모두 있다는 거다. 여기까지가 보편적인 현상이다.


좀 더 나아가면 어떤 사상이나 사건을 심도 있게 논평하고, 내제된 요소를 속 시원히 풀어줄 사람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평론가이며, 대중은 평론가의 높은 식견을 가치판단의 잣대로 삼을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상태는 경제학에서 쓰이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완전히 부합한다. 평론가는 공급이고 독자는 수요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으면 평론가의 가치는 헐값이 되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으면 평론가의 가치는 금값이 된다. 이 얘기는 조금 뒤에 다시 해보자.


당연하겠지만 평론가가 되려면 자신의 경력과 사회적 위치가 뒷받침 돼야 한다. 자격요건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무엇을 해온 사람인가?’ ‘사회적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등을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대중에게 ‘말발’이 먹히려면 자기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권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말이다.


더불어 평론가에게는, 대중 앞에 서기 위해 권위보다 우선시되는 사항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인맥 형성에 힘써야 한다. 둘째, ‘머리에 든 것’이 많아야 한다. 평론가는 항상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골방 안에만 있어서는 습득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으므로 관련 업계 사람과 지속적인 교분을 쌓아야 한다.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게임 업계의 얘기를 폭넓은 지식과 경험에 빗대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모든 조건을 충족하려면 상당한 자기 노력이 요구된다. 이때 글솜씨가 필요한 건 두말 하면 잔소리.







- 평론가로 돈을 버는 방법


아무튼 탁월한 권위와 높은 지성, 폭넓은 인맥을 지니면 ‘전업’ 게임 평론가로 살아갈 수 있는 걸까? 결론을 얘기하기 전에, 평론가를 꿈꾸는 이들이 기대할 수 있는 벌이 수단부터 알아보는 게 좋겠다. 굳이 찾아보면 두 가지 정도다. 게임 리뷰(공략)를 쓰거나, 게임 관련 칼럼을 쓰거나. 게임 개발 컨설팅이나 강연 같은 업무도 있으나 지극히 제한적인 일이므로(국내에서는 더더욱) 패스하자. 이 영역까지 건드리면 글의 스케일이 몹시 방대해지기도 하니.


게임 리뷰와 공략부터 언급해보면,


현재 ‘게임 리뷰’에 돈을 주는 곳은 게임 웹진이나 게임 잡지 정도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잡담하듯 떠들어대는 게 아닌 한 리뷰 작성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게임 리뷰를 쓰려면 해당 게임에 은근히 시간을 들여야 한다. 반드시 엔딩이나 최고 레벨까지 달성할 필요는 없겠으나, 최소한 게임의 포인트를 짚을 정도는 즐겨봐야 한다. 게임에 풍부한 내공도 지녀야 한다. 신선하다고 느꼈던 게임이 이미 20년 전에 나왔던 모 게임과 흡사할 수도 있고, 표절이라고 생각한 게임이 실제로는 표절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결국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시간을 들여 구석구석 체험하는 수밖에.


아무튼 이렇게 리뷰를 써봤자 고료로 받는 돈은 정말 적다. 매체마다 다르나 고작 2~5만원 사이이다. 패키지 게임이라면 게임 타이틀이라는 부수입이 딸려오지만, 뒷면에 ‘Not for Sale'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으니 중고로 팔기도 쉽지 않다.


공략은, 매체마다 다르나 보통 10만원부터 시작한다. 월간지는 인쇄된 페이지당 1만5천원에서 2만5천원 사이를 받았다(‘받았다’란 과거형을 쓴 이유는 그 월간지라는 게 고작 하나만 남았기 때문). 하지만 평론가를 꿈꾸면서 공략을 하는 일은 없으리라 본다. 폐인처럼 게임 하나에만 집중적으로 매달리고 싶을 리도 없고, 무엇보다 노력 대비 효과가 너무 적으므로. 단행본을 발행하면 부수입이 생기지만, 이걸 바라보고 공략을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다음으로 게임 관련 칼럼 기고가 있다.


칼럼 기고는 업계적으로 분명 의미가 있는 일이다. 꽤 고차원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필요하면 업계에 쓴 소리를 뱉어가며 바른 길로 가게끔 종용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칼럼의 영향력이나 기고로 인한 수입 등 현실적 측면은 어떨까?


깊이 따져볼 필요도 없다. 평론을 필요로 하는 수요만 생각해봐도 충분하다. 잡지는 영세해서 기대 액수가 뻔하고, 형편이 좀 나은 일간지는 게임보다 중요한 사건이 넘쳐나므로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제일 중요한 고료는? 잘 받아봤자 200자 원고지 한 장당 1만원이 안 된다. 200자당 1만원이면 A4 한 장에 6만원이다. 혹시 많다고 생각하셨는가? 참고로 이 액수는 문학 글쟁이들의 세계에서 최저 고료 수준이며, 덤으로 글자 수 제한까지 있음을 잊지 말자.



- 온라인 게임 왕국 대한민국에서 고료 수준이 왜 이 모양일까?


어떻게 봐도 열악하다. 온라인 게임 왕국 대한민국의 체면이 있지, 고료 수준이 이다지도 형편없다니!


헌데 흥분을 가라앉히고 면면을 살펴보면 자연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국내 게임 시장은 일견 커 보이지만, 온라인 게임 몇몇이 시장을 몽땅 차지하고 있다. 인기작을 만든 운 좋은 소수의 제작사들만 탄탄한 반석 위에 서 있고, 대다수 제작사들의 기반은 모래사장처럼 허약하다. 다른 축이 되어야 할, 온라인 게임과 달리 명멸 주기가 빠른 오프라인 게임은 거의 고사됐다.


향유 계층의 규모가 크고 취향이 다양한 건강한 게임 시장이라면,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회사나 수준 이하의 저질 게임을 마음껏 비판해도 괜찮다. 약육강식의 원리처럼 열등한 게임은 자연히 도태돼 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게임이 등장할 테니까. 그러나 이 얘기는 국내와 하등 관련이 없는 것 같다. 눈을 질끈 감고 입술에 침을 듬뿍 바른 채 모든 게임에 칭찬만 해도 부족한 게 대한민국이니까.


아울러 글을 기고할 수 있는 신문이나 잡지 등 매체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본래 매체는 시장 기생적인 면모를 보인다. 시장의 흐름이 활발하면 매체도 잘 나가고, 반대의 상황이면 매체도 얼어붙는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매체는 자연스레 기업을 견제하면서 협력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사실보도’라고 해도 보는 관점은 무척 다양하니까 포인트만 달리 하면 된다.


매체 중에는 특정 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전문 매체가 있다. 여러분이 본 글을 보고 계시는 인벤도 게임이 대상인 전문 매체이다. 태생적으로 전문 매체는 종합 매체에 비해 지지 기반이 허약하다. 범위가 좁으므로 해당 분야의 시장 분위기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얘기다. 더욱이 광고가 수익의 대부분인 매체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면서 자생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때문에 기사의 수준은 자연히 조절된다. 맹렬하게 비난해야 마땅할 일도 살짝 꾸짖는 정도로 끝난다.


기업과의 관계 때문에 글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은 비단 게임 업계만의 관행이 아니다. 그러나 게임 매체는 자립도 측면에서 게임업계의 도움(=광고나 커뮤니티 운영, 외주 등)이나 협력(=취재 등)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우므로 선택의 폭이 더욱 좁다. 생각해 보라. 기업 입장에서 자기네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하는 곳에 힘을 보탤 이유가 있겠는가?


요컨대 절박하게 필요하지도 않은 평론가 나부랭이에게 굳이 많은 돈을 줘가며 칼럼 등을 청탁할 곳은 거의 없다. 자생조차 쉽지 않은 판국이니까.








- 게임 평론가가 어려운 진짜 이유


이제 ‘우리나라에서 게임 평론가라는 직업이 자리 잡기 힘든 결정적인 이유’를 이야기해 보자.


글은 남에게 읽히기 위해서 쓰인다. 헌데 정작 소비주체인 게이머들은 글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 수요가 없다는 얘기다. 영화라면 보기 전 ‘재미있을지’ 궁금하고, 본 후 ‘다른 사람은 어떻게 봤나’ 궁금하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고 느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평을 찾는다. 어쩌면 정답이 없는 시험을 본 후 남은 어떻게 풀었을까 맞춰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공감대가 활성화 한 데는, 영화가 게임보다 더 대중적인 문화산업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겠다. 쌓인 세월도 길고 저변도 넓다. 그러나 이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면 ‘진짜’ 이유를 놓치게 된다. 영화는 관람자의 참여 없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콘텐츠이다. 길어도 고작 세 시간 밖에 안 된다. ‘주입식’이면서 ‘시간이 짧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법 넓어졌다는 게임의 저변은 영화에 비해 여전히 좁다. 또 자신이 직접 가상 세계에 입장해서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일반 게이머의 시각에서는 게임 글을 읽을 시간에 게임을 하는 것이 더 현명한 행동이다. 물론 글을 찾는 순간이 전혀 없지는 않다. 자신이 현재 즐기는 게임의 ‘공략’이나, 관심 있는 타이틀 소식을 찾고자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봐야 할 테니까.


이런 판국에 게임 산업이 어떻고 게임 문화가 어떻고 운운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심오한 얘기 따위는 더더욱 필요가 없다. 글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은 끽해야 한 줌도 안 되는 업계 관계자나 마니아뿐이다. 게임 관련 평론가의 영향력이란 고작 이 정도다. 현실적으로 거의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평론가에 돈을 주는 곳이 있다는 게 더 신기하다.






- ‘전업’ 게임 평론가, 앞으로의 전망은?


“앞으로 좋아질 것 같다.”던 고등학생의 생각에 결론을 낼 때다. 우리나라 게임의 변천사를 회상해 볼 때, 정말 좋아질 수 있을까? 과거를 보면 현재를 알고, 현재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는 법인데.


우리나라 게임계는 최근 10년 새 외형적 규모가 수십 배나 커졌다. 허나 장르의 폭이 매우 협소하면서 편향적이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선점 게임이 생기면 그 위상이 최소 5~10년간 굳건하다. 모든 업체가 선점 게임의 클론 게임 제작에 벌떼처럼 달려들고, 게임의 소비층인 게이머들은 그 상태에 무감각해져 버렸다.


많은 개발자들에게 “왜 새로운 게임을 만들지 않느냐?” 물으면 “게이머들이 바라지 않는다.”고 답한다. 이 대답을 곧이곧대로 들을 필요는 없더라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이 확실히 적다. 절망적인 것은 상황이 바뀔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구 헝클어진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엄두조차 낼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게임계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사이, 온라인에서 뒤쳐졌던 해외 개발사들은 부지런히 성장해 우리의 위치를 위협하고 있다!


또한 매체를 포함한 게임관련 산업들은 대부분 영세하기 때문에 기업들과 협력관계를 유지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힘들다. 어느 정도 기업 친화적일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이유이다. 달갑지 않은 평론가는 더더욱 필요 없다.


관련 경력-소위 말하는 감투-도 없는 평론가 따위는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먼지만큼의 영향력이라도 발휘하고 싶으면 뭐라도 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전업 평론가라는 자리는 맨땅으로 시작하기가 너무 힘들고, 화려한 경력의 업계 전문가라면 미치지 않고서야 자신의 안정적인 큰 수입을 내팽개칠 리 없다. 게임평론‘도’ 하는 사람은 있지만 게임평론‘만’ 하는 사람이 없는 진짜 이유는 이것이다.


따라서 평론가는 아니 평론가의 존재 가치는, 평론가가 되기 위해 쌓아야 할 방대한 지식의 양과 식견까지 제쳐 놓고라도, 직업으로서 최소한의 요건인 ‘돈벌이’가 안 되므로 암울하다. 전문가의 글을 요구하는 수요가 충분해야 공급이 있는데 기본 전제부터 말이 안 되니까.


게임계의 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애당초 게임 평론가라는 직함을 달고 다니는 사람도 없지만….





= 블루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