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패키지 게임을 구입해 본 사람이라면 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과 마그나카르타 시리즈는 거의 한 번쯤은 구입을 해서 즐긴 기억이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스토리 라인과 재미로 한국의 대표적인 RPG라고 불린 이 게임들 중에서 마그나카르타는 얼마 전에 콘솔용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발매되기도 했다.


콘솔판 마그나카르타2가 발매되기 전에는 전작인 PC판이 버그로 유명한 탓에 콘솔판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발매된 게임은 버그를 찾아볼 수 없이 깔끔하게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갑자기 게임의 버그가 사라진 궁금점은 KGC09의 개발자 강연회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인벤에서는 마그나카르타2 콘솔판의 국제 공동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소프트맥스의 이주환 콘솔사업부장이 일본과 함께 작업하며 느낀 점을 말했던 강연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이주환 부장은 게임 기획자로 창세기전/판타랏사/서풍의 광시곡 레벨 디자인을 맡았고 템페스트/창세기전3 파트1&2 시나리오 라이터, 마그나카르타1&2에서는 PM을 담당했던, 소프트맥스의 주요 개발자 중 1명이다.






[ 소프트맥스의 이주환 콘솔사업부장 ]


보통 게임을 제작하게 되면 프로젝트팀이 만들어지게 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 돈-시간-사람의 3대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 3가지 요소들을 배치하고 운영하는 것이 프로젝트 관리자가 해야 할 일인데 이 중에서도 특히 사람, 즉 사람 사이의 협력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번에 일본 개발팀과 협력하여 마그나카르타2를 제작하면서 서로 다른 국가의 개발팀이 협력하여 하나의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간의 믿음이었다. 상대방과 신뢰관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처음 만났을 때의 첫인상에서 시작하여 의견 교환과 행동 그리고 피드백을 통해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말이 통해야 한다

외국의 회사와 협력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언어다. 말이 통해야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는 등 일을 풀어나갈 수 있는데, 대부분 자국어만 잘 알고 외국어는 못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전문 번역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자칫 의견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번역을 통해서 대화를 하거나 서면으로 문서를 주고받거나 할 때 상대방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알 수 있으나, 어조나 뉘앙스 및 표정과 몸짓이 말하는 것은 전달되기 어렵다. 그래서 상대방이 정말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에 마그나카르타2를 제작하면서 개발팀의 중간관리 파트에 위치한 사람들을 1년 반에 가까운 시간에 걸쳐서 일본어을 배우게 했고, 그 결과 기획팀의 70%가 영어나 일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유창하게 외국어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잘 하면야 좋지만 적어도 읽기나 듣기만 할 줄 알아도 아예 모르는 것보다 백 배 낫다.





만약 개발팀이 외국어를 어느정도 한다고 해서 번역을 담당하는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 번역가는 단순히 번역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팀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하는 대변인으로서 개발팀의 일원으로 참가시켜야 한다. 그러면 개발팀의 상황을 잘 알고 효율적으로 의견을 전달해 줄 수 있고, 외주 번역 등의 중간단계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



그렇게 중간단계가 줄어들어서 직접 상대방과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프로젝트 진행중 피드백을 빠르게 보낼 수도 있고, 전반적인 프로젝트 진행 효율도 높아진다.



말이 통한 다음에는 서로의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인이 어떤 일을 할 때 보통 일을 하는 도중 그때의 감정 상태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고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며, 개개인의 능력이 일을 좌우하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한다. 그렇지만 일본인이 일을 할 때는 거의 정 반대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계획을 확실히 짜고 개개인보다는 조직의 협력을 중시하며, 논리적이고 정반합이 모두 맞게 일하는 성향이 있다.




[ 한국과 일본의 사고방식의 차이 ]


이런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의 차이를 서로 이해하지 못하면 말이 통하지 않게 된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배우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는데 의사소통이 잘 안되거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여 평행선을 긋게 되면 다시 의견이 만나지 못한다. 생각이 다르면 말이 어긋나고 사소한 오해가 쌓이면서 상대방을 제대로 보지 않게 되고, 결국 일을 제대로 못한다.



이렇게 서로 말과 마음이 제대로 맞지 않으면 믿을 수 없게 되면서 인간관계가 흔들리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서 많은 비용과 시간이 낭비되므로 큰 손해가 발생한다.




일본 개발자의 장인정신과 콘솔게임 개발

일본 게임개발 업계를 한 마디로 줄인다면 닭살이 돋을 정도로 유저들을 떠받는다는 것이다. 모든 유저가 개발자 위에 있는 신과 같을 정도이다. 처음에는 그들이 이상했지만 알고보니 그것은 모두 게임 제작에서 생겨난 장인정신에 기반을 둔 행동이었다.



나 역시 그것을 보고 유저 중시의 장인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마그나카르타2 제작시 내가 지금까지 중요시했던 사람/시간/돈의 효율적인 관리 방침을 버리고 철저하게 장인정신에 입각하여 유저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게임을 만들었다. 여담으로 마그나카르타2 제작 막바지에 퀘스트 하나의 완성도 문제로 처음부터 게임을 재검토한 적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와 같은 장인정신을 이질적인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지만, 콘솔게임을 만들 때 장인정신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일부에서는 장인정신에 대해 '그런다고 게임이 더 팔리냐?'라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런 스타일은 협력작업을 진행하는 데 큰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의 콘솔시장은 매우 작기 때문에 시장성이 낮아서 제작을 잘 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콘솔게임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퍼블리셔 및 플랫폼 홀더와 반드시 협조해야 한다. 특히 게임 퍼블리셔는 게임 개발을 위해 돈을 대주는 곳이 아니라, 상품을 함께 제작하는 파트너인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협조를 얻어야만 사업을 순탄하게 진행할 수 있고, 협조를 얻으려면 신용을 쌓아야 하며, 신용을 쌓으려면 상대방의 기준에 맞춰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고 콘솔게임 개발에서는 퍼블리셔를 따라야 한다.




국제적인 협력작업을 위한 행동 강령

우리와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의 회사와 손을 잡고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염두해 두어야 할 몇 가지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상대방을 논리로 이기려고 하면 안된다. 한국인은 상대방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는 기질이 있어서 모르면서도 우기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어릴적부터 SF나 추리소설을 전국민이 즐겨 읽기 때문에 논리로 이기는 것은 쉽지 않다. 오히려 서로 평행선만 긋게 되고 실패하는 일이 벌어진다. 논리로 우위에 서려고 하지 말고 유저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유저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설득해야 한다.



두 번째는 그래도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 싶다면 말을 돌리지 말고 직구 승부를 해야 한다. 솔직한 모습을 보여줘야 상대방이 신뢰하게 되고, 직구 승부를 해서도 홈런을 맞건 스트라이크가 되건 결국 통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상대에게 맞춰 주는 것이 좋다. 오히려 그편이 깔끔하게 끝나고 작업 진행도 매끄러워진다.





세 번째는 할 말이 있다면 속으로 고민하지 말고 그때그때 바로 이야기 해야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감정에 치우쳐서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은 역효과를 불러 일으키며, 말을 할 때도 유저에 대한 사랑과 장인정신 그리고 명분을 세워서 말을 하라. 외국 개발자들에게 있어서 유저는 개발자 위에 위치한 신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가 콘솔게임을 왜 만드냐고 묻는다면

이번에 마그나카르타2를 만들면서 한국의 패키지 시장은 매우 작은데 왜 콘솔게임을 만드냐는 질문을 받았다. 콘솔게임을 만드는 이유는 콘솔게임에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한다는 것도 된다.



현재 전세계의 게임 시장에서 콘솔 시장이 반수 이상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콘솔 시장은 매우 크다. 물론 온라인 시장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콘솔 시장에 비해서는 아직 작기 때문에 온라인 게임보다 세계를 대상으로 콘솔게임을 만드는 것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외국 업체와 협력하는 이유는 성향이 다른 둘이 만나면 협력 여부에 따라 서로가 가진 힙의 합계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슬램덩크의 예를 들면 성격이 정반대인 서태웅과 강백호가 힘을 합쳤을 때를 생각해 보면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지만 꾸준히 외국과 협력하여 콘솔게임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