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산업진흥법)은 게임을 유통시키거나 제공하려는 자로 하여금 게임물을 제작하거나 배급하기 전에 등급분류를 받도록 하고 있다. 등급을 받지 않고 게임을 제공하거나 유통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당연히 유통도 금지된다. 이런 차원에서 등급을 받지 않은 부족전쟁의 이용 제한 조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 사건에 대해 독일 게임인 부족전쟁에 국내 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옳으냐고 지적하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등급분류제도는 게임물의 윤리성 및 공공성을 확보하고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국내에서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있다면 해외 게임이라도 등급분류의 대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부족전쟁이 국내 서비스와 무관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국 도메인을 따로 구입해 한국어 사이트를 운영하고, 한국 전용 서버를 따로 개설해 서비스하였으며, 한국인 관리자들을 채용해 운영을 일임하는 등의 모습을 볼 때 부족전쟁을 개발한 독일의 InnoGames 는 엄연히 한국을 서비스 대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고 봐야겠다. 오히려 이와 비슷한 웹게임 칠용전설이 12세 이용가 등급을 받은 것을 보면, 이렇게 한국 시장에 정성을 쏟은 InnoGames 가 왜 심의를 신청하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이런 점에서 게임위의 이번 부족전쟁 사이트 차단 조치는 앞으로 있을 비슷한 사례의 선례가 될 것이다. 해외 게임사가 개발해 서버를 해외에 두고 있더라도 국내에 서비스되는 게임이라면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심의를 받지 않은 불법게임물에 대해서는 게임위의 직권으로 사이트 차단 등의 이용제한 조치가 취해진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진 것이다.
어떤 해외 게임은 번거로울 수 있는 심의절차를 모두 거쳐 서비스하는데, 같은 조건의 어떤 해외 게임은 심의를 받지 않고도 아무 문제없이 서비스한다면 이는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부족전쟁 사이트 차단 조치는 게임위가 가진 단속'능력'이 거대한 세계 온라인 게임시장에 비해 얼마나 초라하고 신뢰할 수 없는 것인지를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부족전쟁 사이트 차단, 잘 되었나
부족전쟁만을 놓고 보더라도 잘 처리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하나는 부족전쟁 사이트가 정말 잘 차단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국내 인터넷 망을 통한 부족전쟁 한국 도메인(www.bujokjeonjaeng.kr)으로의 접근은 차단되었지만 부족전쟁의 해외 공식사이트(tribalwars.net)는 여전히 잘 접속되기 때문이다.
부족전쟁은 한국에 서비스하는 것이 분명한 게임이었고, 따라서 차단된 것은 '한국 서비스'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한국어 사이트를 운영하고 한국 서버를 여는 등 한국을 목표로 서비스 한 정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청소년이 접속해 플레이할 수 있는 어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게임이 있다고 가정할 때, 한국어 번역이 되어있지 않았다고해서 게임위가 외면해도 좋은 것은 아니다. 등급분류를 하고 심의를 받지 않은 불법게임물을 단속하는 근본 이유는, 이런 제도를 통해 한국 게이머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어 번역이 되었느냐 아니냐가 심의 대상을 가르는 기준은 될 수 없다.
부족전쟁이 만약 신체가 마구 절단되고 폭력이 난무하는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이면 어쩌려고 한국 사이트만 막아놓나. (물론 부족전쟁이 그런 게임은 아니다.)
또 하나는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는 것이다.
부족전쟁이라는 게임이 입에 오르내리며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진 것은 2008년 초. 인벤에서 부족전쟁을 소개한 것도 2008년 4월의 일이다. 부족전쟁의 원래 이름인 tribal wars가 해외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6년경이지만, 한국에 알려진 2008년 초를 기준으로 잡아도 게임위가 부족전쟁에 어떤 조치를 내리는데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 셈이다.
☞ 관련기사 : 많은 게임에 지친 당신, 알트탭 부족전쟁으로 여유를 (2008. 4. 23)
그러니 그동안 게임위는 뭘 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시 한 번, 부족전쟁이 만약 신체가 마구 절단되고 폭력이 난무하는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이었으면 어쩔 뻔 했나. 게이머는 자신의 연령에 맞는 게임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권리가 있으며, 그 부분을 관리 감독할 책임은 게임위에 있다. 그러나 부족전쟁이 차단당하기 전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부족전쟁을 플레이했던 한국 게이머들은 부족전쟁의 연령 등급에 관한 정보를 전혀 얻지 못했다.
한참동안 손을 놓고 있다가 제보가 들어오고 다른 문제들이 생겨나니까 눈 가리고 아옹 식으로 한국 도메인만 차단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서 게임위가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해야 한다'와 '할 수 있다'의 머나먼 간극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2007년에 있었던 심의 수수료 인상방안 설명회가 떠올랐다.
2007년 5월, 게임위는 재정독립을 목표로 등급 심의 수수료를 인상하겠다는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었는데, 당시 제기된 심의 수수료 체계 개선 방향에는 금액 인상 외에도 여러 가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플랫폼 구분을 세분화해 심의 수수료를 차등적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심의 기준에 따르면 모든 게임은 PC/비디오, 모바일, 온라인 게임, 아케이드의 네 가지 플랫폼으로 구분되었다. 그런데 이런 플랫폼 구분이 '점차 온라인화 되어가고 있는 게임 시장과 동떨어진 면이 있다'면서 '플래시 게임'을 독립된 플랫폼으로 구분하겠다고 했다. (당시 플랫폼 기준으로 플래시 게임은 '온라인'으로 구분되어 심의 수수료가 13만원이었는데, 플래시 게임으로 플랫폼이 분리되면서 심의 수수료도 3만원으로 낮아졌다.)
게임물의 윤리성 및 공공성을 확보하고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등급분류제도의 취지에 공감할 때, 온라인상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플래시 게임도 게임위의 소관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과연 게임위가 인터넷 상에 떠도는 수많은 플래시 게임을 모두 심의할 여력이 될 지, 그 전에 수많은 플래시 게임의 '존재 자체를 인지할 수나 있을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등급 심의를 위반한 어떤 플래시 게임을 적발했다 하더라도 온라인으로 제공되어 수없이 복제, 재생산 되었을 온라인 컨텐츠를 오프라인의 패키지 판매 금지하듯 완벽하게 제한할 수 있을까?
당시에 이와 관련해 질문을 하나 더 했었다. 해외에서 제작되어 해외 사이트에 올라와있는데 국내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플래시 게임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게임위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게임의 제작사나 게임 프로그램이 위치한 서버와는 별개로, 국내에서 접근해 이용할 수 있는 게임물이면 심의의 대상으로 고려된다'고 대답했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해야 한다'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할 수 있다'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남았다. 이런 의문은 현실로 나타났다. 2008년 문광위 국정감사에서 '온라인상에 운영 중인 종합포탈 사이트와 플래시 전문 사이트에 66,727개의 플래시 게임이 서비스 중인데, 이 중 심의가 난 게임은 234개(0.35%)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당연하다. 게임위의 능력과 여력에는 한계가 있다. 확인해야 하는 국내 플래시 게임만 6만 여개라니. 모니터링 요원을 수백 명 채용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국내 플래시 게임만 봐도 이러니 게임위가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전 세계의 게임들을 모두 파악해 심의여부를 판단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부족전쟁에 대한 게임위의 조치가 늦어진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이 서비스되는 걸 방치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동안 부족전쟁이라는 게임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게임시장 온라인화에 대처하는 쇄국정책?
게임위의 분석대로 세계 게임 시장은 점차 온라인화 되어가고 있다. 오프라인으로 패키지를 판매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설치부터 회원가입까지 모두 온라인으로 처리된다. 결제도 페이팔이나 신용카드 같은 글로벌 수단을 활용한다.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된다. 국적을 따지지도 않는다.
플래시 게임은 물론, 웹브라우저를 통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의 비중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유럽의 경우 웹브라우저 게임을 이용하는 액티브 유저는 약 300만 명, 이는 유럽에서 MMORPG 를 이용하는 유저의 수와 맞먹는다고 한다. 웹브라우저 게임은 다운로드를 하거나 클라이언트를 설치할 필요가 없어 누구나 쉽게 계정을 만들어 접속할 수 있다. 국경의 제약도 시간의 제약도 없다. 한국 뿐 아니라 저 멀리 파푸아뉴기니에서도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온라인으로 유통, 제공되는 해외 게임 대부분을 한국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이들 게임의 입장에서는 의도치 않게 한국 서비스도 겸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용할 수 있는 해외 온라인 게임물들은 원칙적으로 게임위의 소관이다. 이 부분은 위에서 언급한 설명회에서 확인했듯 게임위 내부적으로도 가지고 있는 원칙이었다. 이런 원칙에 입각한다면 현재 온라인으로 유통, 제공되는 해외 게임들 대부분은 우리나라 등급 심의의 대상으로 고려되어야 하며, 이 중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은 불법게임물이 될 것이다.
결국 부족전쟁식의 접근이라면 온라인을 통해 한국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대부분의 해외 게임들이 불법 게임물이 된다. 부족전쟁이 그랬듯 불법 게임물은 이용제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사이트 접속은 물론 게임 서버에 접속하는 것도 모두 차단되어야 하는 것이다.
심의를 받지 않은 해외 온라인 게임을 등급분류 제도의 취지에 따라 차단하는 것까지는 좋다. 다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차단에 차단을 거듭하는 것이 과연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온라인 게임강국'의 바람직한 모습일까. 성벽을 높이 쌓고 해외로 나가는 문을 모두 걸어 잠그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21세기 온라인 게임 환경에 쇄국정책이 어울리냐는 문제다.
최고의 답이 아닌, 최선의 답을 찾아갈 때
수많은 게임을 게임위가 모두 확인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제기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플래시 게임이나 웹브라우저 게임, 온라인으로 서비스되는 해외 게임들에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제기도 이미 오래된 것이다.
그런데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 해외 온라인 게임 하나를 콕 집어서 접속을 차단하는 것이 현재 게임위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라면, 게이머들의 권리와 법익은 내버려두고 행정편의만을 도모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초에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온라인'의 특성을 게임산업진흥법이 반영하지 못하는 점이 문제다. 그러나 쇄국을 하자는 게 아니면, 법 핑계만 대고 있을 게 아니라 해외 온라인 게임들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등급분류는 어떤 식으로 접근할 것인지 진작 생각해봤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등급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게임위가 여력이 되지 않아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보완기구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전문가와 관계자로 이루어진 민간자율기구가 정식 심의를 받기 전까지 임시로 등급을 부여할 수 있도록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문제가 된 게임을 우선 차단하고 볼 것이 아니라, 해외 온라인 게임이 소속국가에서 받은 연령 등급을 기준으로 삼아 적당한 가등급을 우선 부여하는 식으로 게이머와 학부모들에게 연령 등급 정보를 제공하고, 그 후에 조치를 취하는 방법도 생각해봄직하다.
물론 대안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과 게임 시장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법에만 얽매여서도 안된다. 게임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어떻게 하면 게임에 대한 등급 정보를 더 잘 제공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등급분류제도가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을 잘 지켜낼 수 있을지 지금이라도 논의해야 한다.
Inven Niimo - 이동원 기자
(Niim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