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는 11일 "플랫폼별 산업규모와 특성을 고려"하고 "(게임)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확정한 심의수수료 조정안을 발표했다. 시행은 16일부터.
☞ 관련기사 : 게임위 심의수수료 조정 확정, 이달 16일부터 시행 (2009. 3. 11)
인상규모에 대한 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보도 자료의 제목부터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다. '저용량 PC, 콘솔, 모바일게임물 심의수수료 조정폭 낮춰 시행', '게임업계 85% 이상의 중소기업에 30% 감면 제도 도입'. 애써 '인상폭이 크지 않다'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는 모양이지만 심의수수료가 인상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예를 들어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은 현행 심의수수료 조건 하에서는 '온라인 게임물'로 분류되어 13만원의 심의수수료를 지불하는데, 조정안에 따르면 PC 게임의 기초가액 24만원에 네트워크 이용계수 1.5와 RPG장르 계수 3.0을 곱해 108만원의 수수료를 내야한다.
무조건 인상만 되는 것은 아니다. 게임위는 '상시고용인 50인 미만이거나 총매출액 50억 원 이하의 중소기업'은 심의수수료를 30% 환급하기로 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들 중소기업은 얼마나 수수료 부담이 줄어들까.
해당조건을 만족하는 어떤 중소기업이 300MB이하 저용량의 캐주얼 액션 게임을 하나 만들었다고 할 때, 심의수수료는 기초가액 8만원에 네크워크 이용계수 1.5, 캐주얼액션 장르계수 2.0을 곱한 24만원에서 8만원을 환급받은 16만원. 16만원은 현행 심의수수료 13만원과 비교하면 크게 차이나는 액수는 아니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의 용량은 300MB를 넘기는 것이 보통이라 감면의 혜택이 크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같은 조건에서 용량이 300MB를 넘을 때의 심의수수료는 48만원으로, 이전에 13만원을 수수료로 지불했던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30% 감면'이 얼마나 마음에 와 닿을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금액 문제를 떠나서 현행 심의수수료 체계는 10년 전에 마련된 것으로 개편이 필요하긴 했다.
플랫폼 구분이 패키지(PC,비디오)게임, 온라인게임, 모바일게임, 아케이드 게임의 4가지로만 되어 있어 현시점의 다변화된 게임 플랫폼과 다양한 장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고, 게임의 장르나 게임 콘텐츠의 양, 한글화 여부와 상관없이 동일한 금액의 수수료가 책정되어 있어, 심의에 드는 노력과 비용의 차이가 수수료에 제대로 반영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2008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게임산업진흥 중장기계획(2008년~2012년)'에 등급분류제도 개선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당시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하도록 게임 콘텐츠의 등급분류제도를 선진화하고 신규 플랫폼에 대한 탄력적 수용이 가능하도록 체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니 '글로벌 트렌드와 신규 플랫폼을 고려한' 결과가 게임위가 이번에 발표한 '심의수수로 조정안'에 반영되었어야 마땅한데,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2007년에 처음 마련된 것이 심의수수료 조정안이 수수료 금액 외에 큰 변화 없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심의수수료 조정안이 단순히 '재정독립을 위한' 수수료 인상이 아니라 '게임 산업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면 '글로벌 트렌드와 신규 플랫폼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녹여내야 했던 것이다.
당장 심의수수료 조정안을 발표하자마자, 애플 앱스토어 게임이 논란의 도마에 오른 것만 해도 그렇다.
전 세계 누구든지 게임을 개발해 업로드할 수 있는 앱스토어의 특징을 뒤로하고, 게임 개발자 개인이 사업자등록을 하고 게임위에 심의를 신청해야 한다는 것이 넌센스라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게임위는 애플측이 게임을 모아 한 번에 심의를 받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앱스토어에 등록된 게임의 심의수수료가 10만원이라고 하면, 6천 개의 게임을 모두 심의 받는데는 6억 원의 비용이 든다. 하루에도 수백 개씩 새로운 게임이 올라오는데 애플측이 이를 쉽게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령 모두 심의신청이 들어온다고 해도 게임위가 이를 하나씩 진중하게 심의할 시간이 될지도 의문이다.
이번 심의수수료 조정안에 따로 플랫폼 구분이 되어있긴 하지만, 플래시 게임을 포함한 웹 전용게임도 국내 게임물 등급심의제도가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대표적인 분야다. '웹'이 가지는 속성을 등급분류제도가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게임위는 부족전쟁 등 몇몇 웹게임 사이트를 차단하면서,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에 대한 강경한 조치를 천명했지만, 부족전쟁이 사이트주소를 바꿔가며 게임위와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이 그 예.
애초에 해외에서 개발되어 글로벌한 시장에 글로벌한 결제수단으로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에 한국의 심의 잣대를 들이대는 발상이 낳은 촌극이다.
이는 플래시 게임이나 해외 온라인 게임도 마찬가지. 웹상에 존재하는 게임은 모두 심의하기엔 수도 너무 많고, 새로운 게임의 등장도 매우 빠르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심의의 대상이다'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심의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의문은 2008년 문광위 국정감사에서 '온라인상에 운영 중인 종합포탈 사이트와 플래시 전문 사이트에 66,727개의 플래시 게임이 서비스 중인데, 이 중 심의가 난 게임은 234개(0.35%)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 관련기사 : [칼럼] 온라인 게임강국의 쇄국정책? 부족전쟁 차단을 바라보며 (2009. 1. 30)
현재의 게임 환경은 이렇게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국내와 해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플랫폼의 경계마저 사라지는 추세에 있다.
모든 게임의 심의를 게임위가 직접 관장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게임 환경을 반영하면서도, '게임의 윤리성, 공공성 확보와 청소년 보호'라는 등급분류 본연의 취지도 잘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2년 간의 힘겨운 논의를 끝마치고 드디어 확정된 심의수수료 조정안. 그 속에서 시대의 흐름과 게임 시장의 변화에 한 걸음 뒤쳐진 모습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Inven Niimo - 이동원 기자
(Niim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