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전해진 소식 하나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현금거래를 이유로 기소된 사안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를 판결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현금거래가 완전 합법화되었다는 의견도 있고, 현금거래를 금지하고 있는 게임사의 약관은 어떻게 되느냐는 등 이래저래 뒤숭숭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합법화'라는 말은 지나친 면이 있습니다. 저번 기사에서도 썼지만, 현금거래 자체는 합법의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판결에 대한 정확한 의미, 그리고 이로 인해 바뀌게 될 미래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 이미 합법인 현금거래, 이번 판결은 재확인일 뿐

    현금거래는 이미 합법의 영역에 속해 있습니다. 인벤 토론장을 위시한 많은 게임 관련 게시판에는 현금거래가 합법이니 불법이니 하는 글이 많이 올라오는데,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현금거래 자체는 불법이 아닙니다. 고스톱, 포카류의 게임머니 거래, 해킹이나 오토를 통해 생산된 게임머니와 아이템의 거래만이 불법일 뿐입니다.


    따라서 개인간의 거래는 과거에도 불법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 이전 벌금형을 선고했던 2심 판결에서도 일반 온라인게임의 경우 개인간 현금거래는 처벌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현금거래 자체가 불법이라면, 아이템베이와 아이템매니아 등 현금거래 중개사이트를 운영하는 업체들이 버젓이 영업을 할 수 없습니다. 불법이라면 해외에 서버를 두고 해외에서 영업을 하겠지만, 중개사이트는 엄연히 한국에 서버를 두고 세금도 잘 내고 이미지 개선을 위한 사회사업도 하고 관공서로부터 종종 상도 받는 등 일상적인 기업의 활동을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번 판결로 인해 현금거래의 합법성 여부가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단지 현재 상황의 재확인일 뿐입니다.


    ☞ 개인간 거래는 처벌대상이 아니라는 판결문 관련 기사 (2008.12.24)
    ☞ [뉴스] 온라인게임 현금거래, 대법원 첫 무죄 확정 (2008.01.10)






  • 온라인게임 그리고 시세차익을 노리는 리셀러에게 면죄부

    그러나 이번 판결로 인해 확실해진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고스톱이나 포카류의 게임이 아닌 온라인 게임에서의 게임머니는 오토나 해킹을 통해 획득한 것이 아니라면 법적으로 거래가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온라인 게임의 게임머니가 규제대상인지 아닌지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해답이 이번 판례를 통해 확인된 것입니다. 오토나 해킹이 아닌 게임 플레이 과정에서 생성된 게임머니의 거래는 불법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재확인인 셈입니다.


    두번째로, 현행 법률하에서는 작업장이 오토나 해킹이 아닌 사람의 플레이를 통해서 획득된 게임머니를 판매해도 법으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뜻과 같습니다. 개인간의 거래는 처벌대상이 아니라는 과거의 판결문도 있었지만, 이제는 더 나아가 작업장이라 해도 게임머니 획득과정이 법에 저촉되지 않으면 (= 오토나 해킹이 아니라면) 되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시세차익을 노리는 리셀러의 행위도 무죄입니다. 시세차익을 노리고 싼값에 나온 게임머니를 사들여서 좀 더 높은 값에 판매하는 행위 역시, 그 게임머니가 오토나 해킹을 통해 획득된 것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면 법으로 처벌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번 재판은 시세차익을 노리고 싸게 사들여 비싸게 파는 리셀러들을 검찰이 게진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기 때문이기에 리셀러들은 확실한 면죄부를 얻은 셈이죠.


    결론적으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그간 논란이 되어 왔던 사항들에 대해 법적인 판단 기준을 마련해준 것입니다. 지난 여름, 현금거래 특집기사 4탄에서 썼던 " '1) 개인이나 작업장이 2) 오토, 해킹 등 불법적 방법을 이용하여 만든 물량을 3) 직업적으로 판매' 하는 세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것만 아니라면 굳이 처벌하지는 않겠다 " 라는 것이 현재 현금거래에 대한 정책적, 법적 입장 이라는 문구 그대로입니다.


    ☞ [현금거래 특집 ④] 현금거래는 소득공제 대상?! (2009.06.14)



  • 현금거래 적발시 계정압류 약관은 일단 그대로

    이번 일로 인해 현금거래를 할 경우 계정을 압류하는 게임사의 약관이 변경될 것을 기대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현금거래시 계정압류는, 현금거래가 불법이기 때문에 압류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금거래가 비록 적법한 행위 혹은 법에 저촉되는 행위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게임사와 게이머가 게임을 서비스하고 이용함에 있어 '현금거래를 하지 않고 현금거래시 계정을 압류한다'는 민사 계약을 맺었고 그 민사 계약에 의거하여 계정을 압류하는 것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형사적으로 무죄인가 유죄인가를 따지는 것이지, 민사 계약을 논한 것은 아닙니다. 현금거래를 한다고 해서 법적으로 처벌하지는 않지만, 계정 압류는 형법상 처벌 내용이 아닌 민사상 계약 위반에 따른 조치이기에 관련성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분간은' 게임사의 약관이 바뀌기를 기대하거나 현금거래를 이유로 압류된 내 계정이 풀릴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 현금거래 금지 조항, 변화의 가능성과 방향은 ?

    바로 윗줄에 기대하지 말라고 했지만, '당분간은' 이라는 조건을 달아놓았습니다. 지금 당장이야 큰 변화는 없겠지만, 몇 개월 후 그리고 몇년 후를 내다보면 변화의 가능성이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 예상되는 변화 - 1 : 현금거래시 제재 기준의 완화

    현재 게임사들의 약관상 일정횟수 이상의 현금거래가 적발되면 영구 계정 압류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준을 완화하여 영구 계정압류를 없애고 제 아무리 횟수가 많더라도 일정 기간만 압류하는 방식으로 제재 조항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현금거래 적발시마다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의 짧은 기간만 계정을 압류하는 형태로 매우 완화함으로써 사실상 현금거래를 용인하는 형태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많은 게임사들이 동시접속자와 매출을 고려하여 현금거래에 대해 매우 느슨하게 규제하는 상황이기에, 더 나은 고객 서비스를 명목으로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대기업들이 먼저 나서서 이런 조치를 시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생존이 목전에 걸린 중소게임사들의 경우, 이번 대법원 판결을 기회로 삼아 더 나은 고객서비스를 명목으로 현금거래 압류 계정을 대대적으로 부활시키거나 제재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조치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 예상되는 변화 - 2 : 중개사이트가 서비스하는 게임의 동향이 중요

    판결이 나고 나서 첫번째 출근일인 1월 11일 월요일, 아이템베이로부터 두건의 보도자료가 왔습니다. 하나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는 아이템베이와 아이템매니아의 공동 입장 발표문입니다.


    또 하나는 바로 아이템베이가 이야인터랙티브의 무림외전의 채널링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아이템매니아처럼 게임사업을 시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이템매니아는 샴페인 매니아, 레드 매니아 등 여러 게임의 채널링, 리퍼블리싱 사업을 전개해 왔습니다. 심지어는 스타크래프트 E-Sports 구단 인수를 시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 두건의 보도자료가 같은 날 왔다는 것이 매우 공교롭기도 했습니다.


    ☞ [논평] 변방의 최富者일까? 아웃사이더(?)의 한빛스타즈 인수 (2008.08.06)


    중개사이트는 매우 오묘한 위치에 있습니다. 중개사이트를 운영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서비스하는 게임의 약관에는 현금거래 금지조항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중개사이트를 통해 마일리지를 적립하는 등 중개사이트와의 제휴 이벤트도 수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판결을 기회로 삼아, 중개사이트가 서비스하는 게임들이 현금거래시 제재 기준을 완화하거나 혹은 현금거래 금지조항 자체를 약관에서 삭제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나아가 자신이 서비스하는 게임들을 자사의 중개툴을 이용하여 직접 중개하는 상황까지 갈 수 있습니다. 하다 못해 과거 로한의 경우처럼 현금거래 사이트의 회원정보 DB 와 게임의 회원정보 DB 를 연동하여 손쉽게 거래를 알선하는 기능 정도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변화가 시작된다면, 현금거래 중개사이트가 서비스하는 게임들이 한 축이 될 것입니다. 중개사이트의 게임사업 진출은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개사이트가 서비스하는 게임으로부터 현금거래 금지 약관의 변화가 시작되고 직간접적인 중개서비스가 이루어진다면, 시나브로 다른 게임사들로 퍼지게 될 것입니다.



    # 예상되는 변화 - 3 : 현금거래로 압류된 계정을 풀어달라는 소송은 ?

    또 하나 예상 가능한 것이 현금거래를 이유로 영구 압류된 계정을 풀어달라는 소송이 이루어질 가능성입니다. 쉽게 말하면, 법적으로 무죄인데, 단지 현금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영구압류를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니 계정을 풀어주거나 제재 기준을 대폭 완화해달라는 요지의 소송을 걸 수 있는 것입니다.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는 몇년 걸릴지라도, 이런 소송이 이루어져 판결이 난다면 이번 판결처럼 또 하나의 확고한 판례가 될 것입니다. 1심이든 2심이든 3심이든 소송을 제기한 게이머들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진다면 위에서 말한 1, 2 의 변화가 더욱 빨리 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 ▲ 현금거래 중개사이트가 서비스하는 게임들이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가 ]




  • 게임위와 공정위, 그리고 게임산업협회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

    만일 게임사가 현금거래 금지조항을 약관에서 삭제한다면 과연 법적으로 처벌받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질 경우, 그렇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도덕적인 측면에서의 비판, 여론의 비난은 받을지언정, 현금거래 자체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판결이 난 상황, 그리고 중개사이트가 직접적으로 서비스하는 게임도 있고 많은 게임들이 중개사이트와 제휴하여 마일리지 적립이나 회원유치 등의 이벤트를 수시로 진행하는 상황에서 처벌을 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슷한 사례를 오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토에 대한 규제는 계속 강화되는 추세이고, 개정될 예정인 게진법에도 그런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무림외전을 필두로 수입되는 중국게임들 위주로 게임사가 직접 게임내에 자동사냥 기능을 포함시키는 경우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게임위가 제동을 걸었지만, 우회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게임내 자동사냥 기능이 삽입되어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게임들에서 자동사냥 기능이 제공되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 게임을 서비스한 게임사가 별다른 처벌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게진법이 통과된 것도 아니지만, 개정되는 게진법 조항 역시 게임사의 직접적인 제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진법 개정 조항은 '게임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할 목적으로 게임물사업자가 제공 또는 승인하지 아니한 컴퓨터프로그램이나 기기 또는 장치를 배포하는 행위'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게임사가 승인했거나 직접 했다면 이 법조항과는 무관하게 되는 거죠.


    현행 법률상 게임사가 현금거래시 제재 기준을 완화하거나 혹은 현금거래 금지 조항을 약관에서 삭제한다 할지라도 법적으로 처벌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간은 갖은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 감행할만한 조건이 부족했는데, 그 퍼즐조각 중 하나가 이번 대법원 판결로 채워진 셈입니다.


    법률로 게임사의 현금거래 중개업 겸업이나 알선 기능, 약관 내용 등을 규정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법하나 바뀌는 것에 하세월인 상황에서 그런 내용을 규정하는 법률이 만들어질려면 앞으로도 족히 몇년은 더 걸릴 것입니다.


    이때 제동을 걸 수 있는 곳이 바로 게임위와 공정위입니다. 현금거래와 관련하여 제기될 많은 민원사항에 대해 공정위가 어떤 결론을 내리는지, 그리고 현금거래 제재 기준의 완화나 현금거래 금지조항의 삭제, 나아가 자사 게임에 대한 직간접적인 중개 서비스 제공에 대해 게임위가 어떤 결론을 내리는지가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게임산업협회가 게임사들과 함께 현금거래에 대한 게임사들의 자율적인 룰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가 또 하나의 관건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게임산업협회에서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에 대해 문광부나 게임위와 협의하여 공동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 가이드라인을 어기는 곳에 대해서는 물론 게임위 등 관련 기관 차원에서의 제재가 들어가야겠지요.


    게임 심의에만도 허덕이는 게임위, 그리고 별다른 힘이 없는 게임산업협회, 이 두곳이 어떤 대응을 하느냐가 제도적으로 완비되지 않은 현금거래 관련 정책을 좌우할 수 있는 유이한 곳입니다. 만일 별다른 대응안을 준비해놓지 않는다면, 중개사이트의 게임서비스가 별다른 장애없이 이루어지게 되었듯이 중개사이트나 몇몇 중소게임사가 선도하는 현금거래 관련 변화가 고스란히 반영되고 이는 게임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을 증가시키는 데 일조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