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 서비스는 무엇인가?
스팀(Steam) 서비스는 카운터스트라이크, 하프라이프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개발사 밸브(Valve)가 만든 PC 게임 온라인 유통 시스템입니다. 말 그대로,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PC 게임을 구입한 후 게임을 자신의 PC로 즉시 다운로드 받아서 플레이 할 수 있는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스팀이 지금이야 업계와 유저 모두에게 PC게임의 대세로 인정받고 있지만, 사실 처음에는 밸브의 자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플랫폼 정도로만 인식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카스를 하기 위해서는, 혹은 하프라이프를 하기 위해서는 스팀을 깔아야 한다."는 정도였죠.
하지만, 시간이 흘러 갈수록 거대 퍼블리셔들이 스팀의 장점들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스팀에 하나 둘씩 동참하기 시작했고, 스팀으로 서비스되는 PC게임의 수가 많아지면서, 이용자의 수도 급속도로 증가했습니다. 각 게임별, 장르별 유저 커뮤니티까지 크게 활성화되면서 소위 '대박'이 났습니다. 홍보효과와 판매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패키지 판매와는 별도로 반드시 스팀에 입성해야만 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입니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북미 거대 온라인게임 퍼블리셔인 소니 온라인 언테테인먼트를 비롯해서 국내 굴지의 게임회사 엔씨소프트까지 스팀에 합류하면서 에버퀘스트, 리니지, 길드워와 같은 MMORPG도 스팀 서비스를 통해 손쉽게 플레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엔씨소프트의 MMORPG 아이온은 출시 직전 진행한 스팀 예약판매를 통해 가장 많이 판매되는 게임 1위에 한동안 오르며 북미유저들에게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왜 하필 스팀인가?
사실 저는 처음에 스팀서비스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게임을 구입하는 것에는 실제 패키지를 하나 둘씩 모아가는 재미도 상당한데, 온라인으로 게임을 '그냥' 다운로드 받는 것뿐인데도 패키지와 완전히 동일한 가격을 받는 불합리(?)한 처사에 대한 불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스팀과 오프라인 패키지 판매 둘 다 가능할 때는 일부러 오프라인 쪽을 선택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스팀에 빠지게 되자 'PC 게임은 스팀이 진리'라는 공식이 제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부터는 신작만 나오면 스팀을 먼저 찾게 되는 굴레에서 벗어나오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가 업데이트 및 패치 설치에 대한 해방입니다. 최근 PC게임들이 온라인 컨텐츠들을 강화함에 따라 거의 온라인게임과 맞먹을 정도로 업데이트 및 패치 빈도가 잦습니다. 밸브 자사의 멀티플레이 FPS 게임 팀 포트리스(2007년 10일 출시)는 지금까지 총 107개의 업데이트가 있었습니다.
일반 패키지를 구입했다면 공식홈페이지에서 패치를 직접 찾아서 다운로드하고 설치하는 수고를 해야 하고, 가끔씩은 운영체제에 따라 에러가 발생해 골치가 아프기도 합니다.
스팀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자동입니다. 스팀을 실행시켜두면 업데이트 혹은 패치가 있는 게임은 알아서 설치를 해줍니다. 스팀 클리이언트 기반이기에 오류 걱정도 거의 없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가장 최신의 패치를 즐기면서도, 들이는 노력은 커피 한잔 마시며 업데이트 내용만 체크하는 것뿐입니다.
스팀의 두 번째 장점은 반드시 스팀 클라이언트를 통해야 게임이 실행되기 때문에 해킹, 치트에 비교적 안전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온라인 혹은 멀티플레이 게임에서 이 장점은 더욱 부각되는데, 인기 FPS 게임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치트 유저들이 스팀에서는 좀처럼 발을 붙이지를 못합니다. 최근 MMORPG 개발사에서 스팀을 더욱 주목하고, 스팀에 더욱 동참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세 번째는 PC게임과 커뮤니티에 최적화된 인터페이스 입니다. 스팀 온라인 상점에서는 판매되고 있는 게임들의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고, 일부 게임들은 동영상과 평점, 그리고 데모 버전까지도 제공하고 있어 소비자가 자신에게 맞는 게임을 제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커뮤니티 탭에서는 각 게임들의 전용 게시판을 제공할 뿐 아니라 성향이 맞는 유저들끼리 그룹을 형성할 수도 있고, 그 안에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도 할 수 있습니다. 친구로 등록한 유저들끼리의 메신저 기능도 지원합니다. 특히, 게임을 플레이 중일 때도 특정 키 조합을 입력하면 인터페이스 창이 열리면서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채팅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스팀 클라이언트 자체 음성채팅 기능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언제 스팀에 가입했고, 그 동안 어떤 게임들을 플레이 해왔는지에 대한 게임플레이 통계기능도 구현되어 있습니다. 특정 게임들은 도전 과제도 준비되어 있어서 친구들과 달성도를 비교해 가며 더욱 플레이에 몰입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각 개인의 아바타도 설정이 가능하고요. 심지어는 도구 탭에서 맵, 혹은 스테이지를 자체 개발하고자 하는 개인 개발자들을 위해 각종 개발키트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스팀 클라우드라는 기능도 있는데요, 자신의 스팀 계정에 각 게임별 단축키, 그래픽 설정 등의 정보를 등록해 놓고 어떤 컴퓨터에서 실행시키든지 그 설정을 그대로 불러올 수 있습니다. 즉, PC게임에서 상상하는 그 모든 것들이 스팀클라이언트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입니다.
가장 중요한, 네 번째 장점은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언제 어디서나 쉽게 구입하고, 즉시 플레이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굳이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고생할 필요도 없으며, 일반 온라인 쇼핑몰 구매처럼 택배를 목매어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흥정한 필요도 없고요, 사기를 당할 위험도 제로입니다.
구입 즉시 스팀 게임 목록에 구입한 게임이 나타나며 다운로드만 완료되면 바로 플레이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게임시장이 협소해 외산 PC게임이 좀처럼 정식출시 되지 않는 국내의 게이머들에게는 스팀의 역할이 사막의 오아시스만큼이나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스팀의 필살기 – 이름하여, '강제적 지름신 소환 스킬'
스팀이 지금까지 열거한 장점만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전 세계 수많은 게이머들의 영혼까지는 구속하지 못했을 겁니다. 지난 번에 기사로도 잠깐 소개했지만 스팀에서 300만원치 게임을 구입하는 게이머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보는 눈이 많아 정확한 금액은 공개하지 않습니다만, 저도 지금 스팀에서 구입한 게임들의 가격을 계산해보니 아찔하네요.
[관련기사] 게임 300만원치 팝니다, 이베이에 계정올려 화제
방 한구석에 멋진 표지의 패키지도 장식해 놓을 수 없는 '무형'의 스팀서비스에서 게이머들이 왜 이렇게 지를까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스팀만의 효과적인 세일 마케팅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폭탄적인 할인율의 주말 세일부터, 깜짝 주중세일, 크리스마스 기념 세일, 연말 세일 등 매일 매일 무슨 세일하는지 궁금해서 스팀을 실행시키지 않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평소에 구입하고 싶었으나,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잠시 미뤄뒀던 게임이 마침 주말 세일 배너에서 단돈 “2달러에 팝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나타나 있다면, 그 순간 아무 생각 없이 신용카드를 꺼내 들고 결제창을 입력하는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크리스마스나 연말 세일 때는 매일 세일 리스트가 갱신되는 전략을 펼치는데요, 새벽 2시쯤 리스트가 갱신되는 순간에는 전세계 수많은 게이머들이 접속을 시도하는 바람에 스팀 상점 페이지가 한동안 다운되는 기현상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가장 스팀의 악랄한 세일 마케팅 도구는 특정 컨셉으로 묶여진 세일팩입니다. 예를 들어 밸브 컴플리트 팩이 있는데, 여기에는 카운터 스트라이크부터 하프라이프, 레프트4데드, 오렌지박스 등 밸브사가 지금까지 내놓은 모든 게임들이 총망라 되어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구입하면 거의 30만원 가량하는데 이를 거의 20만원 정도가 할인된 99.99달러에 판매합니다. 특별 세일 기간에는 여기에 추가 할인까지 들어가기 때문에 평소에 밸브표 게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헉" 하는 순간 바로 지르게 됩니다. 작년 연말 세일에서는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을 필두로한 에이도스 컴플리트 패키지가 전 세계 게이머들의 지갑을 그대로 털어갔습니다.
‘나는 워낙 절제력이 풍부한 사람이기 때문에 세일 따위에 절대 흔들리지 않아’라는 분이 만약 계신다고 해도 스팀 앞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안 지른다, 안 지른다 해도 가끔씩 주말마다 진행되는 무료플레이 행사에서 공짜로 한번 해보고 나면 어김없이 하나씩 구입하시더군요.
세일 뿐 아니라 상점 페이지 안에서의 효과적인 홍보 전략 또한 스팀만의 장기입니다. 특정 게임이 새로 출시됐을 때는 기존 페이지의 형태를 완전히 바꿔서 전면도배를 하는 과감한 베팅을 보여주기도 하며, 세일이 진행될 때는 우측 배너 크기를 살짝 수정해서, 깔끔한 느낌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클릭은 클릭대로 이끌어내는 괴력까지 발휘합니다.
또 한가지 스팀이 잘하는 게 있다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인디 게임과의 관계를 돈독히 유지해왔다는 것입니다. 2008년 2월경에 출시된 오디오서프는 스팀과 인디게임과의 만남이 가장 큰 시너지 효과를 낸 사례 중에 하나입니다.
그 이후 점차 인디 레이블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더니 어느 샌가 스팀이 인디 게임사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플랫폼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실, 저용량이면서도 복사 방지 장치가 그 누구보다도 간절한 인디 게임사에게는 패키지 생산도 필요 없는 온라인 배급 시스템인 스팀이 가장 어울리는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팀이라는 무법자?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
이처럼 완전무결한 악마의 프로그램(?)인 스팀도 좋은 것만 있지는 않습니다. 일단 다양한 개발사에서 제작되는 게임을 스팀이라는 하나의 클라이언트로 묶다 보니 호환성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오디오서프도 출시 초기, 스팀을 켜도 실행이 제대로 되지 않는 버그로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현격히 그 빈도가 줄었습니다만, 초반 이미지가 매우 중요한 패키지 게임에서는 분명 큰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프로그램적인 문제일 뿐 아래에 설명할 것들 보다는 심각하지 않습니다.
스팀 서비스를 통해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PC 게임을 쉽고 빠르게 구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PC 게임을 유통하는 국내 퍼블리셔들에게는 스팀만큼 잔인한 경쟁상대가 없습니다. 게임을 정식으로 유통하기 위해서 소요되는 시간 동안 스팀에서 미리 상당 수의 유효 구매수요를 뺏겨버리니까요.
지금이야 환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라 국내 정식 출시작들이 가격 면에서는 경쟁력이 있지만, 예전처럼 1 달러 당 환율이 1000원 밑일 때는 스팀으로 사는 게 오히려 더욱 이익일 때도 많았습니다. 거기다가 스팀 세일까지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전환이 당연한 수순인 것은 이해하지만, 국내 시장을 생각하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스팀을 통해 국내에 무심의 게임들이 마구 유통된다는 사실입니다. 스팀 자체적으로 국가별 판매 금지 게임 리스트를 관리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유통사와의 관계 때문에 존재할 뿐 심의를 받았는지의 여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국내에서 게임이 서비스되기 위해서는 무조건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를 통해 심의를 받아야 하는 것이 맞고, 그렇지 않으면 불법이 됩니다.
하지만, 스팀에서는 이런 부분이 간과되고 있습니다. 18세 이상 게임들도 입력하는 연령만 살짝 속이면 미성년자도 마음껏 접근할 수 있습니다. 최근 게임위가 애플사의 앱스토어에 미심의 게임이 불법 유통되는 것을 강력히 제재한 것과는 상당히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게임위가 이전에 보여줬던 방법들, 단순히 틀어막거나 차단하는 것 또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미 국내의 게이머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스팀을 통해 게임을 구입해서 플레이 해왔고, 그 수와 금액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예전 오게임이나 부족전쟁의 사례처럼 스팀으로의 접속을 강제적 차단하게 되면, 자신의 재산권을 수비하고자 하는 게이머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게 분명하며, 그 리스크는 분명 게임위가 짊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스팀의 존재가 하루 이틀 전에 국내에 알려진 것도 아니며, 수 차례 심의 문제가 거론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자국에서 이미 관련 기관으로부터 심의를 거친 게임의 경우에는 게임위에서 심의를 직접 받지 않더라도 등급을 인정해주는 대안도 있지만 현재 앱스토어 둘러싼 게임위와 애플의 관계를 보면 쉽게 해결되지 않을 전망입니다.
앞으로도 스팀을 포함한 온라인 게임 유통 시스템은 엄청난 발전을 이룩할 것으로 보입니다. 스팀 자체 발표에 따르면 2009년까지 총 2,500만명의 유저를 확보했다고 합니다. 지난 2010년 게임 시장 전망 세미나에서 밝혀진 대로 이미 PC 게임에서만큼은 온라인 판매가 패키지 판매를 훨씬 앞섰습니다. 이 추세대로 간다면, 북미 시장에서 진출하려는 우리 개발사들도 앞으로는 스팀과의 면밀한 협조를 이루지 않고서는 힘이 부칠지도 모릅니다. 이미 국내에 남아있는 '돈을 주고 게임을 구입하는' PC 게이머들 또한 스팀으로 상당 수가 넘어갔습니다.
단순히, "외국에 저런 것도 있다더라.", "에이, 나둬. 외국 회사 돈 벌라고 해" 정도로 치부하지 말고 전 세계 PC 게임의 새로운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스팀을 정확히 이해하고 장점과 단점을 따지 보면서 우리의 것으로 흡수하려는 지혜가 강조되는 시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당면해 있는 스팀의 이중 유통과 미심의 게임 유통 문제 또한 게임계 모두가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전 세계 흐름에서 우리만 뒤쳐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아이폰과 국내 앱스토어를 한번 보십시오. 아직도 게임 카테고리는 찾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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