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게임'의 장점이라면 액션 어드벤처 장르에서는 주인공을 직접 컨트롤하면서 현실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화려한 액션을 펼쳐 보이거나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등 간접적인 체험이 가능하다는 점일 것이고 시뮬레이션 장르에서는 게임에서 제공하는 선택지를 통해 이야기의 흐름에 개입하여 이야기를 바꾸어 나가고 더 나아가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완전히 다른 결말을 동시에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리고 헤비레인과 같이 스토리 진행 간에 특정 상황에서만 벌어지는 액션으로 플레이를 해나가는 인터랙티브 드라마라는 장르는 스토리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몰입 감을 느끼게 해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퍼즐이라는 장르는 어떨까요? 지금까지 접해왔던 퍼즐 게임에서 영화 같은 게임을 떠올리려고 하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퍼즐 자체의 난이도, 밸런스와 심오함으로 각광을 받은 게임은 많지만 영화 같은 퍼즐 게임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깊이있고 짜임새 있는 스토리로 한국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페르소나 시리즈를 개발한 아틀라스는 퍼즐이라는 게임 장르를 기본으로 결혼과 사랑, 이성 관계를 다룬 매우 현실적인 스토리로 한 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영화 같은 게임 캐서린을 내놓았습니다. 그것도 착하디 착한 한글화로 말이죠.

다분히 현실스러운 스토리와 퍼즐, 그리고 어드벤처
32세의 평범한 샐러리맨 빈센트 브룩스는 5년간 사귀어온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30대 초반의 미혼남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결혼에 대해 생각하고 그로인해 많은 것들을 고뇌하게 됩니다. 빈센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애인 캐서린은 임신과 부모님의 성화를 언급하며 빈센트에게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것을 요구합니다. 결혼에 대해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해왔던 빈센트는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자 많은 혼란을 겪게 되고 결국에는 끔찍한 악몽까지 꾸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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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가 퍼즐의 시작입니다. 현실의 고민거리(임신, 결혼)들은 꿈속에서 끔찍한 모습으로 형상화 되어 빈센트를 잡아삼키기 위해 발밑에서부터 쫓아오고 빈센트는 이것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육면체의 상자들로 이루어진 계단을 끊임없이 올라갑니다.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는 상자들을 옮겨 발판을 만들기도 해야하며 상자에 매달려 이동하여 새로운 길을 찾기도 해야합니다. 그리고 정상에 다다르면 빛으로 가득한 문을 열고 악몽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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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악몽에서 탈출한 빈센트는 지난 꿈속에서의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악몽을 꾸었다는 것만 어렵풋이 느낄 뿐입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는 낯선 여자가 누워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지금의 애인과 같은 이름의 캐서린. 애인 캐서린과의 결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때, 의도치않게 바람을 피우게된 빈센트는 또다른 고민거리가 가중됩니다.
사람마다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친구와 술이기도 합니다. 빈센트 역시 스트레이 쉽이라는 술집에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넣고 조언을 듣기도 하며 술을 마시기도 합니다.
지금의 여자친구 캐서린과 의도치않게 바람을 핀 상대 캐서린에게 문자 메시지가 오기도 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일상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러한 과정을 게임내에서 어드벤처 형태로 자연스럽게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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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의 고민거리들로 악몽을 꾼 경험이 있거나 혹은 기자처럼 30대 초반의 미혼남성이라면 현실에서 경험해 봄직한 게임내 상황에 감정이입이 극대화되고 이 과정에서 다분히 현실적인 스토리로 퍼즐, 어드벤처로 이어지는 흐름은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캐서린이 성인등급 게임인 이유는 단순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어서가 아니라 다분히 현실적인 게임 스토리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연령이 성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낸 3D 카툰 랜더링
캐서린은 크게 3D 카툰 랜더링과 애니메이션으로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이중 카툰 랜더링에 훨씬 많은 비중을 두고 있으며 캐릭터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 표정연출이나 동작은 매우 자연스러운 편입니다.
당황하여 땀을 흘리거나(땀방울이 지나치게 빨리 떨어지긴 합니다만...) 놀라서 눈을 부릅뜰 때, 화를 내며 테이블을 두 손으로 치는 움직임 등에는 어색함이 없으며 캐릭터 마다의 개성을 잘 표현하여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캐릭터를 직접 컨트롤 하는 퍼즐, 스트레이 쉽의 어드벤처 부분과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역시 장점입니다.
오히려 비중이 적은 애니메이션 파트에서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지는데 작화의 퀄리티가 그리 높지 못한 편이며 스토리 후반부에서 일어나는 작화 붕괴는 아쉬운 부분이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페르소나 시리즈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소에지마 사게노리가 디자인한 캐릭터의 개성과 특징을 잘 살리고 있으며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게임 스토리와 잘 어울리는 그래픽은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편입니다.
퍼즐과 어드벤처
한 편의 애니메이션 같은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플레이의 중심이 되는 퍼즐과 어드벤처 부분입니다. 퍼즐 장르를 선호하지않는 기자이기에 시작부터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지모드로 플레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만만치 않은 난이도는 수차례 게임오버를 맛본 후에야 조금씩 익숙해지는 수준입니다.
퍼즐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에게는 게임 난이도가 초반의 장벽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상자로 이루어진 계단의 꼭대기로 올라가 악몽에서 탈출하는 것이 목표로, 계단 아래에서는 현실에서의 고민거리가 흉측한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계단을 부수며 올라오고 때로는 빈센트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괴기스러운 분위기는 공포감을 조성하고 손에 땀을 쥐게하는 긴장감을 제공합니다.
기본적으로 오를 수 있는 상자는 한 칸씩으로 꼭대기로 오르기 위해서는 상자를 밀고 당겨 새로운 계단을 만들어야합니다. 상자를 밀고 당기면 등장하는 아이템을 획득하여 한 번에 두 칸, 세 칸을 오를 수도 있으며 원하는 위치에 상자를 만들어 발판을 만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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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속 퍼즐의 스테이지는 탑으로 된 구조이며 탑의 한 층(스테이지)을 끝낼 때마다 세이브와 새로운 기술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로비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새로운 기술이란 퍼즐을 풀기위한 상자를 이동하는 방법으로 로비에 있는 양들(현실에서의 인간)과의 대화를 통해 플레이어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기술 정보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로비에서 익힌 기술은 다음 스테이지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구간이 있어 자연스럽게 익히게 됩니다. 물론 새롭게 획득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러한 기술을 확실히 익히고 연마해두는 것이 게임 후반부로 갈 수록 어려워지는 퍼즐을 쉽게 풀어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게임 초반 어려운 난이도라는 장벽을 허물고나면 퍼즐 장르의 장점인 중독성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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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 위치한 고해실을 통해 다음 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이 때 의문의 목소리가 플레이어에게 질문을 합니다. 질문의 선택지는 두 가지로 결혼과 사랑과 관련한 질문부터 '나는 사실 변태적이라고 생각하다'와 같은 성적 성향을 묻는 질문까지 다양한 질문이 있으며 재미있는 것은 물음에 답을 한 후에 다른 플레이어들의 선택 결과를 로딩구간에서 원형 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엔딩의 분기와 관련이 있기도 합니다.
퍼즐 스테이지를 완료하고 악몽에서 깨면 스트레이 쉽이라는 조그마한 바에서 어드벤처 파트를 플레이 할 수 있습니다. 어드벤처 파트는 스트레이 쉽의 공간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게임 후반부로 갈수록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애인 캐서린과 바람을 피우게 된 상대 캐서린, 두 캐서린과 주고받을 수 있는 문자는 상당히 이색적이며 가끔 문자와 함께 오는 야한 사진을 화장실에서만 볼 수 있다는 설정도 재미있습니다.
또한 악몽속 로비에서 만났던 양들을 현실에서의 모습으로 만날 수 있으며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고 수수깨끼를 풀어가는 과정 역시 또 하나의 재미입니다.
어드벤처 파트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할 것은 미니 게임인 라푼젤으로 악몽속에서의 퍼즐과 플레이 방법은 동일하지만 시간의 제약이 없고 난이도가 훨씬 어렵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물론 퍼즐에 약한 기자는 훗날 유투브의 힘을 빌려야만 클리어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연스러운 성우들의 연기와 특유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음악
페르소나 시리즈의 음악으로 유명한 메구로 쇼지가 캐서린에서도 역시 음악을 담당하였습니다. 캐서린의 BGM은 때로는 몽환적이고 때로는 공포스러운 스토리와 전체적인 조화가 잘 이루어지고 튜토리얼을 비롯한 메뉴 선택에서도 음성이 가미된 것은 캐서린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한 몫 합니다.
스트레이 쉽에 있는 쥬크박스를 통해 게임의 BGM을 선택적으로 들을 수 있으니 복잡한 퍼즐에 지친 게이머라면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잠시 머리를 식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습니다.
일본말을 알아들을 수준의 외국어 실력을 갖추지 못한 기자이기에 성우들의 연기를 100% 이해하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성우들의 연기는 매우 흡족하게 느껴집니다. 게임내 모든 대화가 음성으로 구현되어 있기 때문에(NPC와의 대화를 포함) 자막으로만 이루어 경우보다 훨씬 몰입감이 높으며 귀로 듣는 성우들의 연기를 감상하는 또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캐서린은 상당한 만족감을 주는 작품 중에 하나
최종적으로 말하자면, 캐서린은 상당한 만족감을 주는 작품 중에 하나입니다. 아틀라스의 새로운 시도는 다분히 현실적인 스토리와 퍼즐, 어드벤처가 적절히 융화되어 몰입감을 높히고 성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괜찮은 수준의 3D 카툰 랜더링으로 한 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다양한 엔딩과 점차 익숙해지는 퍼즐은 한 번의 엔딩을 본 뒤에도 다시금 게임 패드를 꺼내어들게 하기에 충분하고 아틀라스의 특유의 깊이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야기 전개와 그 분위기를 좋아하는 게이머들에게도 충분히 어필될만 합니다.
하지만 주된 액션이 퍼즐이라는 점에서 게임을 접하기전부터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며 가끔은 패드를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의 어려운 난이도(슈퍼이지 모드가 추가되기는 했습니다만...)는 퍼즐을 선호하지 않는 게이머들을 붙들어 두기에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결혼과 사랑에 대해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30대 초반인 기자의 상황이 캐서린을 더욱 재미있게 즐긴 이유가 되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게임의 스토리를 중시하고 공감대가 형성(?)될만한 상황의 게이머라면 캐서린을 지금당장 플레이해보라고 주저없이 추천하고 싶습니다.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지만 플레이스테이션3를 활용한 HD 게임의 포문을 연 아틀라스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기에 아틀라스와 페르소나 시리즈를 좋아하는 게이머들에게는 아틀라스의 그 첫 걸음을 경험해 볼 것을 권유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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